서울의 가장 오래된 도심을 걷다

만일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한국다운 곳’이 어딘지를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종로를 손에 꼽을 것이다. 왁자지껄한 재래시장부터 고즈넉한 고궁들까지, 종로는 서울 시내에서 옛적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곳이기에 수십 세대 앞선 삶을 살아간 옛 선조들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비 내리는 종로는 청승맞다기보다 차라리 경건한 느낌이었다. 많이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가을의 종로를 만나봤다.

최초의 근대적 휴식처, 탑골공원

탑골공원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일제 강점기 당시 3·1 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적 현장이다. 본디 절터였던 땅에 1897년, 고종 황제가 최초의 서구식 근대 공원을 조성한 것이 탑골공원의 시작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파고다공원’이라는 옛 지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비가 오는 터라 한산해진 공원에 들어서니, 오른편에 3·1 운동을 기리는 조형물이 가장 먼저 보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궂은 날씨에도 공원을 찾은 어르신들이 팔각정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을의 탑골공원은 단풍나무들로 절경을 이룬다. 특히 빗물이 고인 석재 바닥에 비춰진 단풍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황홀한 느낌마저 든다. 운동기구 하나 없는 탑골공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에 더 뇌리에 남는다.

한양 3대 장시, 광장시장

탑골공원 정문에서 동쪽으로 약 15분을 걸으면 광장시장(廣藏市場)이 나온다. 종로4·5가와 청계천 사이에 있는 이곳은 서소문 밖 칠패*, 종로의 종루 시전(市廛)과 더불어 한양 3대 장시로 꼽히는 큰 시장이었다. 현재 이곳은 구제의류·잡화 외에도 빈대떡, 육회, 마약김밥 등의 먹거리로 유명한 ‘먹방’의 명소로 떠올랐다.
광장시장은 넓은 곳이라는 의미의 ‘광장(廣場)’을 본뜬 것이 아니라,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두 다리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다하여 명명됐다. 그러나 현재 점포 수 5천여 개, 종사자 수 약 2만여 명, 일일방문고객 수는 약 6만 5천여 명에 이르는 등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광장(廣場)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아도 어색함이 없다.
낡은 건물을 대부분 그대로 보존해둔 광장시장에는 지난 100여 년 서울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도시적 외관의 입구로 들어서면 밝은 조명과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밀집된 신식 가판 사이사이로 보이는 녹슨 철제 간판과 칠 벗겨진 전봇대에서 옛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포목점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자,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와 구수한 기름 냄새가 가득한 ‘먹자골목’이 나왔다. 광장시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곳도 바로 이 먹자골목이다. 투박하고 정겨운 이름의 가게들. 손님들은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으며 빈대떡에 막걸리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때맞춰 내리는 비는 정취를 한껏 돋우었다. 비좁은 광장시장의 골목은 온갖 정겨운 소리로 가득했다. 이렇듯 푸근한 정경이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음악 애호가들의 ‘낙원’, 낙원악기상가

광장시장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으면 낙원상가가 나온다. 낙원상가는 지난 1970년대, 통기타 문화의 유행을 기점으로 서울 최대의 악기상가로서 발돋움했다. 5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상가지만, 우습게도 워낙 유서가 깊은 종로에서는 젊은 축에 든다.
상가 건물로 들어선 기자들의 눈에 처음 띄었던 것은 온갖 종류의 악기들이었다. 색소폰, 우쿨렐레, 피아노……. 심지어 블루투스 스피커나 신시사이저 등 첨단 음향장비까지 판매하고 있어 없는 악기를 찾기가 더 힘들었다. 낙원상가라는 이름 그대로, 음악 애호가들에게 이곳은 ‘낙원’이 따로 없으리라.
악기시장의 최대 호황기였던 8, 90년대와는 달리 요즘의 낙원상가는 조금 썰렁하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 최대의 악기상가임에는 틀림없다. 건물은 낡았지만 낙원상가를 방문한 손님 중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기타를 둘러멘 청년들이 악기상가를 기웃거리면, 상가 주인들이 친절하게 이들을 맞이한다.
낙원상가의 매력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 진열된 고가의 악기들을 지나가던 손님들이 건드려도 이를 제지하는 주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타 상점을 기웃거리면 오히려 직접 연주해보라며 친절하게 권하기도 한다. 한참 이것저것 만져보다 사지 않고 돌아서더라도 따뜻하게 인사를 건넨다.

종로의 옛 주인이었던 조선 왕조의 막이 내리고 강남을 비롯한 서울의 곳곳이 개발된 오늘날, 종로를 서울의 중심이라 칭하는 것은 이제 어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로는 낡은 서울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역사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역사의 발자취를 느끼기 위해 종로를 찾는다. 우리의 ‘낡은 서울’이 부디 오래도록, 언제까지나 제자리에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칠패(七牌) : 조선시대 서울 시내에 있던 시장으로 현재의 남대문시장을 일컫는다.


글·사진 김은지 수습기자
장혜진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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