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 축산시장 방문기

‘여행’이라는 말은 두 글자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고 가슴 뛰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여행’이라는 단어는 우리 마음에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 여행에 들어가는 막대한 시간과 돈. 과제와 시험에 치이면서 살아가는 대학생에게 여행은 어느덧 사치가 됐다. 하지만 ‘길을 나서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이라는 선물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기자들이 지친 당신을 위한 작은 여행을 준비했다. 바로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으로의 여행이다.
마장동은 우리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우리대학교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출발해 왕십리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한 후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마장역이 나온다. 여기서 2번 출구로 나와 마장중학교 방향으로 300m 정도 걸어가면 마장동 축산시장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대학교에서 한 시간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 마장동 축산 시장 입구

마장동의 어제와 오늘

서울 성동구 마장로 31길 40번지, 마장동 축산시장의 주소다.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왕실의 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던 곳이다. 거기에서 지금의 마장(馬場)동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이곳에는 지난 1958년 마장동에 가축시장이 개장했고, 이어 1961년에는 동양 최대의 도축장인 서울시립제일도장이 문을 열었다. 이 가축시장과 도축장을 중심으로 해 자연스럽게 축산시장이 형성되면서 마장동 축산 시장은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됐다. 마장동 도축장은 1998년 문을 닫았으나 마장동 축산시장은 전국 최대의 축산시장으로서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마장동 축산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 △△축산, ◇◇정육과 같은 간판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싱싱한 생고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밀려오고, 상인들과 손님들이 벌이는 승강이 소리도 함께 따라왔다. 시장을 찾은 가족, 연인, 친구들은 저마다 때깔을 자랑하는 고기들 앞에서 행복한 흥정을 했다. 비로소 마장동 축산시장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마장동 축산시장은 서문, 남문, 북문이 따로 있을 만큼 그 규모가 제법 크다. 남문 부근에는 먹자골목이 자리 잡고 있는데 작은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마치 80년대 영화의 배경 같았다. 직접 고기를 고르는 것이 번거롭다면 이 먹자골목에서 고기를 사 먹는 것도 좋다. 이곳의 식당들의 모든 고기는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 맛 또한 신선하고 훌륭하다. 사람들은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소고기 한 점과 차오르는 소주 한 잔에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장동 축산시장이 항상 이런 활기찬 모습만을 보여줬던 것은 아니다. 마장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상인 ㄱ씨는 “구제역 뉴스가 나올 때면 심장이 내려앉는다”며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악재와 경기침체로 인해 마장동 축산시장의 방문객은 지난 2008년까지 지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만화나 TV 프로그램에서 마장동 축산시장을 다루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장동은 2010년 ‘마장 축산물시장 상점가 진흥 협동조합’(아래 협동조합)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중흥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 남문 먹자골목

협동조합, 마장동 축산시장 부활의 문을 열다

협동조합이 출범하고 나서, 가장 공을 들인 사업은 바로 ‘고기 익는 마을’이라는 마을 기업의 설립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을 마장동으로 불러올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협동조합의 상인들은 노량진 수산시장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방금 산 펄떡펄떡 뛰는 생선을 자릿값만 내고 밑반찬과 함께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시스템을 마장동 축산시장에도 도입한 것이다. ㄱ씨는 “협동조합이 들어서고 나서 확실히 시장을 찾는 손님이 늘었다”며 “특히 젊은 손님들의 방문이 늘었다”고 말했다.
시끌벅적한 시장거리를 돌아다니던 기자들은 선홍빛의 쇠고기들이 부위별로 걸려있는 한 정육점 앞에서 발을 멈췄다. 둥그렇기도 하고 네모나기도 한 붉은 고기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에 바삐 움직이던 걸음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붉은 고기 사이에서 빛나고 있는 하얀 우유색의 마블링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라 ‘백견이 불여일식(食)’이다. 쇠고기의 자태가 그리 먹음직스럽다한들, 맛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어, 얼른 지갑을 꺼내들고 서문 가까이 있는 ‘고기 익는 마을’로 서둘러 들어갔다. 인심 좋은 상인은 친절한 설명으로 쇠고기를 골라줬다. 그리고는 당연한 듯 차돌박이를 덤으로 줬다. 시장의 넉넉한 인심이 절로 느껴졌다.
식당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노릇한 냄새를 풍기며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고기 굽는 냄새에 마음만 급해진 기자들은 아직 핏기가 가시지도 않은 고기를 눈앞에 두고 애꿎은 집게만 쥐었다 폈다 했다. 직접 고른 고기를 바로 구워 먹으니 맛은 배가 됐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 채 식탁에 오른 음식을 먹는 요즘, 자신이 먹을 음식을 직접 찾아다니고, 그 음식을 식탁에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값진 경험임이 틀림없었다.

마장동, 그러나 그곳은

이처럼 활기를 되찾고 있는 마장동 축산시장은 그 한편에 씁쓸한 풍경도 담고 있다. 마장동 축산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상인들의 사진이나 인터뷰를 구하기 가장 어려운 시장으로 꼽힌다. 축산·정육과 관련한 일을 천시했던 오랜 편견 때문이다. 조선 시대 백정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축산·정육업 종사자에 대한 멸시의 역사는 길다. 이러한 후진적인 인식은 아직도 남아있어 상인들은 스스로 노출을 꺼리고 있었다. 실제로 기자들도 취재하면서 위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외국에서는 정육업 종사자들은 ‘요리사 뒤의 요리사’라고 불릴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요리사 뒤의 요리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풀만 무성한 식탁 앞에 앉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은 깊어가고 날씨는 추워지는 요즘,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 마장동 축산시장을 방문해 고기 한 점을 앞에 두고 몸을 녹이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마장동 시장에서 쇠고기 한 점을 먹으면서 그 쇠고기가 우리의 입에 오기까지 밤낮없이 땀 흘리는 상인들을 생각한다면, 더없이 따뜻한 가을밤이 될 것이다.

 

글 사진 김지성 수습기자
이청파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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