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술안주는 씹히는 맛이 있어야 하고, 이 중 최고인 것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다. 가끔 맥주집에서 의도치 않게 옆자리 사람들의 목소리 높은 대화를 듣게도 되는데, 직장 동료들에게는 회사의 상사가, 아줌마들에게는 시집 식구들이 바로 이 안주감이다. 대학에 있다고 해서 이 메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이든 교수들과 자리를 하면 요즘 젊은 교수들이 얼마나 버릇없는 지를 성토하고, 젊은 교수들과 함께 자리를 하면 예전 교수들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탓한다. 모두 함께 모이면? 그때는 대학원생을 씹으면 된다.

한때는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이 학부 수석 졸업자들의 꿈이었고, 본교 대학원도 재수를 해서라도 들어가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시기를 경험했던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취직해보려다 잘 안되니 대학원에 잠시 몸을 걸치려는 듯이 보이는 요즘의 학생들이 탐탐치 않을 수도 있다. 또 예전과 달리 대부분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학비 지원을 받고, 또 상당수는 생활비까지 지급받으며, 실험 장비나 연구 환경이 훨씬 좋아진 것도 교수들의 이런 불만에 한몫을 하고 있다. 분명 외형상으로는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이 크게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고등 학문의 위기, 특히 이공계 대학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서 우리의 고등교육 기관의 구조와 기능은 너무 천천히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나 약대로 진출하려고 하는 것은 어느 선진국에나 있는 일이다. 미국의 명문대학들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난 1년간 머물면서 살펴본 프린스턴 대학도 졸업생 절반 가까이는 학계가 아니라 뉴욕의 금융계로 진출한다. 미국 전역에서 학문적 발전 가능성이 최고인 학생들만 선별해 냈지만 결국은 돈이 가져다주는 단기적인 편안함의 유혹을 이겨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 학교의 경우에는 해외를 비롯한 다른 우수한 대학에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대학원생들 덕분에 높은 연구력을 유지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우리의 경우 ‘본교 출신’ 대학원생을 얼마나 유치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더 큰 틀에서 대학원생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원생 수를 늘리기 보다는 오히려 숫자를 줄이고 대신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의 명망을 빼고는, 기숙사, 실험실 공간, 학제 간 연구의 가능성, 대학원 과정 중에 해외 연수 기회, 독립된 연구 제안 및 수행의 기회, 학교가 제공하는 장학금 등 대학원생을 위한 인프라 중 만족스럽게 생각되는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 한 가지 우리 대학이 가지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매우 우수한 학생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으로 박사 공부를 위해 떠나는 현상이다. 국내 학계가 고사한다고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비유하자면 축구의 K-리그의 활성화와 유럽리그 진출이라는 문제와 비슷하다. 국내 대학원에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우수한 인력이 더 좋은 환경에 가서 더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해외든 국내든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일하면 좋은 일 아닌가. 굳이 여기에 민족적 이익을 내세운다면 이러한 우수한 인력을 국내로 다시 유치할 계획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중국이 진행해온 ‘1000인 계획’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학원의 발전을 위한 여러 노력 중 간과된 것 하나는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 문제다. 국내 외국인 전임교원의 비율이 7.7%로 계속 상승 추세에 있지만, 이는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목적 때문에 억지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고, 실제로 우수한 외국인 전임교원 확보를 위해서는 현재의 보수나 지원 체계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석사과정생 중 여학생의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지만 박사과정에서는 30%대로 떨어지는 문제도 고민해야 할 주제 중 하나이다. 또 대학생 만 명당 유학생 수가 150명 수준으로 정체 혹은 감소 추세 있는 것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의 정의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는 문제의 중심에 있는 구성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술자리가 아닌 환한 장소에서 대학원과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에게 충분히 씹힐 수 있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문제 해결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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