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지난 50년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 온 우리 사회 시스템이 지닌 취약성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하지만 참사가 일어난 지 40일이 넘어가는 지금은 슬픔과 분노를 가다듬고 세월호 참사 발생의 원인과 책임자의 규명,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시스템 개선에 힘을 쏟을 때이다.

지난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담화를 발표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대책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해양경찰청의 해체, 안전행정부의 기능분화, 국가안전처와 행정혁신처의 신설, '관피아' 철폐, 공직임용제도의 개선 등이다. 담화 중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어쩌다가 우리 정부가 이러한 일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고 이런 무능한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생각하며 더욱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대통령의 담화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대책의 큰 그림이 제시되었지만 아무도 이번 대책으로 정부의 노력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러한 기나긴 여정에서 정부는 다음의 사항들을 고민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미시적 문제와 사회시스템과 관련된 거시적 문제를 분리하여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는 작게는 담당 선원과 공무원들의 실수와 무사안일 등이 포함되지만 동시에 사회시스템적인 차원의 원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시적인 차원에서의 책임은 검찰과 감사원이 담당하여 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국민을 대신하여 정치권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규명과 대안제시를 책임져야 한다.
둘째,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철저한 원인 규명을 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0여일 만에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내어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기에 이번 대통령의 담화는 행정적인 처방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움직임이라고 이해된다. 철저한 원인 규명 없이는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제대로 수립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을 동원하여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원인 조사와 처방에는 앞으로 50년 이상 우리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충실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
셋째, 몇 개 부처의 조직과 기능을 수정하거나 신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재발이 방지될 것이라고 섣불리 기대해서는 안 된다. 각 영역에서 책임을 갖고 일하는 공무원들이나 책임자들이 자신의 일을 '원칙을 준수해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시스템의 유인과 보상체계를 새로이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 속을 뛰어들 정도로 정의감과 공공의식이 뛰어난 사람들로만 공무원을 충원하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보통 수준의 윤리의식을 지닌 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만 수행하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즉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으로 이러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 전 1년은 권력누수 현상이 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길어야 2년 반 정도의 시간을 지닐 뿐이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회사의 합병도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는데 3년~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심지어는 많은 경우 실패하기도 한다. 하물며 국가 시스템을 변화시켜 기존의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안착하도록 만드는 일은 이 정권의 임기 내에서는 완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일차적으로 철저히 원인규명과 근본적 처방에 힘을 쏟고, 국가시스템의 개혁이 정권의 임기를 넘어서 지속적인 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치권이 국민들과 한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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