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최근 행보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은 연초에 ‘통일은 대박’이라 선언하고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위원장을 직접 맡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반도 통일의 앞선 모델로 독일 통일의 방식과 내용을 참고하고자 직접 해외순방외교를 펼치고 있다.
변화무쌍한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2만 6천여 명에 이른 새터민이 대한민국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정치인을 비롯한 이 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새터민들의 행사에 참가해 연설할 때마다 “여러분들은 통일의 역군이며 먼저 온 통일입니다”라는 고정된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한편, 새터민 선배는 후배들에게 ‘분단시대 3등 국민, 통일시대 1등 국민’이 바로 새터민이라는 말을 전하며 새터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 아니라 이 사회의 맨 아래 구석에 던져진 3등 국민임을 자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새터민들 자신이 사회적 소외와 편견을 체감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통일을 축복이 아닌 재앙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물론 이와 같은 편견의 1차적 원인제공은 다름 아닌 새터민 본인들이 자초한 측면도 분명 있다. 작금 한 탈북기업인이 120억 원의 돈을 횡령하고 제3국으로 도피했다는 뉴스가 전 언론에 도배되고 있으며, 화교 출신 새터민이 간첩이냐 아니냐의 논란으로 세상이 무척 시끄럽다. 하지만 이런 뉴스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의 일상사 중 한 파편에 불과하다. 굳이 새터민이 아니더라도 그런 사건사고들은 적어도 5천만 명 이상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진정 새터민들이 ‘먼저 온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최소한 우리 사회의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새터민들은 북한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교육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통일을 연구한다는 이 나라 통일연구기관을 보면 새터민들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새터민들은 북한을 반대해 총을 든 군대에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다. 6·25전쟁 때는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앞장서 목숨 바쳐 싸웠는데 오늘 이 시대에 내려온 새터민 청년들에게는 무기를 쥐어주기 불안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같은 ‘인식의 과오’가 분단을 지속시키는 근본 원인이다. 편가르기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저급한 순혈주의 문화가 남북 분단의 장벽을 70여 년간 단단하게 고정시켜온 한 요인이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한민족의 통일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바로 이 순간이 통일을 시작할 때일 수 있다. 북한 주민들도 통일을 열망하고 있으며 새터민들은 거기서 달려온 선구자들이라고 한다. 서독 체제의 우월성이 통일로 확대된 통일 독일의 사례를 우리 민족의 경우에도 적용한다면 제도적으로 우월한 쪽이 통일을 이끄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통일은 재앙이 아니라 민족사적으로 단군 이래 최대의 축복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가슴뛰는 대사건이 될 것인즉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새터민들을 우리 사회의 주변인이 아닌 진정 ‘먼저 온 통일’로 우리가 인정하고 ‘통일의 역군’으로 활용해야 할 때다. 이제 새터민에 대한 소외와 편견을 버리고 새터민 모두를 ‘가족’으로 인식할 때 합심해 통일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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