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0대 종합일간지의 역사와 특성을 알아보다

 

앞의 설문조사는 우리나라 10대 종합일간지에 대해 갖고 있는 연세인의 인식을 조사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눈과 귀를 책임지는 10대 종합일간지의 창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종합평가 1위를 차지한 「중앙일보」부터 10위인 「세계일보」까지 종합평가 순위 순서로 살펴보자.

 

최초로 3개 매체를 경영한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지난 1965년 9월 22일 이병철의 ‘정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함’이라는 이념으로 창간됐다. 「중앙일보」는 창간 당시 다른 신문사에서 기자들을 스카우트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일보」는 편집국 인원 25명과 업무, 광고 분야 인원의 상당수를 잃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동양 라디오’와 ‘동양 텔레비전’을 통해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의 3개 매체를 경영하는 첫 언론기관이 됐다. 창간 13주년인 1978년 12월에는 발행부수 100만을 달성했음을 공표했다.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로 TBC는 KBS에 흡수됐고 이에 「중앙일보」와 TBC가 중앙일보사로 변경됐다. 현재 「중앙일보」는 주식회사의 형태로 경영되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해외지사를 두고 있다. 자매지로는 「월간 중앙, 「이코노미스트」, 「여성 중앙」, 「코스모폴리탄」, 「레몬트리」, 「쎄씨」, 「뉴스위크」 한국판 등이 있다.

 

국민주주 신문 「한겨레」

「한겨레」는 지난 1988년 5월 15일 송건호가 대표가 돼 창간됐다. 초기 명칭은「한겨레 신문」이었으나 1996년에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겨레」는 우리나라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모금에 참여한 국민들로부터 자본금을 모아 국민들에게 주식을 배정하고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국민주신문’으로 창간됐다. 또한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편집위원장을 직선제로 선출했다. 「한겨레」는 ‘진보’와 ‘신뢰’를 표방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특정 자본으로부터의 제도적 독립을 위해 국민의 영세 자본으로 경영 중에 있다. 자매지로는 「한겨레21」, 「씨네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코노미 인사이트」, 「나·들」 등이 있다.

 

발행부수 가장 많은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동아일보」, 「시사신문」과 함께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창간을 허가해 1920년 3월 5일 창간된 종합일간지다. 발행 초기엔 경영 자금 부족으로 발행인과 경영진이 자주 바뀌었으며, 1920년대의 반일적 논조 때문에 4차례 정간되기도 했다. 1929년에는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표어 아래 여름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을 모아 한글 보급반을 조직, ‘문자보급운동’을 폈다. 이후 해마다 ‘문자보급운동’을 진행하며 「동아일보」의 ‘브나로드운동’과 함께 농촌계몽과 문맹퇴치에 기여했다. 지난 1972년 3월 5일 52주년 기념호를 통해서는 독자가 50만 명을 넘었다고 공식 선언했다. 현재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종합일간지 정기구독률 1위 신문이며  「주간조선」, 「월간조선」, 「산」 「월간낚시」, 「가정조선」, 「스포츠조선」, 「FEEL」등의 자매지를 두고 있다. 해외판으로는 미주, 브라질, 시카고, 벤쿠버판이 발행되고 있다.

 

현재 사원주주회사인 「경향신문」, 그 뿌리는 천주교

 「경향신문」은 지난 1946년 10월 6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유의 신문사로 창간됐다. 1959년 2월 4일, 「경향신문」의 칼럼 ‘여적’에 실린 글로 인해 내란선동 혐의로 기소되는 ‘여적 필화 사건’이 발생해 논설위원 주요한이 구속된다. 이로 인해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같은 해 4월 30일에 폐간됐다가 196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복간됐다. 1974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문화방송과 통합되고 1978년 3월 발행 10000호를 맞는다. 이후 1981년 문화방송과 분리돼 사단법인으로서 출범한 「경향신문」은 1990년에 한화그룹에 매각됐다가 1998년 사원주주회사로 독립했다. 현재 「경향신문」은 2010년 기준 6만 2천 부의 발행부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스포츠경향」, 「주간경향」, 「레이디경향」, 「경향게임스」 등의 자매지를 두고 있다.

 

국내 첫 신문 박물관을 개관한「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김성수를 대표로 한 78명의 발기인에 의해 창간됐다. 창간 당시 민족을 대변하는 신문, 문화주의 제창이라는 이념에서 출발해 항일의 성격을 띤 기사를 발행했다. 또한 ‘브나로드운동’과 ‘연정회’, ‘신간회’의 운동 등을 지원했다. 따라서 일제의 주요 탄압대상이 됐다. 해방 직후부터는 보수적 성향의 논조를 보여 오다가, 1960년대에는 반독재, 민주언론의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중반엔 기자 대량 해고사태와 광고탄압으로 광고의 98%를 싣지 못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지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5일 동안 사설을 싣지 않는 것으로 저항했고, 김영삼 정부 때까지 대표적인 야당지로 구분됐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 정권과의 갈등을 겪으며 논조가 크게 달라졌다. 「동아일보」는 2000년 신문의 역사적 자료를 보존하고 교육하기 위해서 신문박물관(Presseum)을 개관했고, 현재 일본의 「아사히신문」,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더 타임스」 등과 제휴하고 있으며 세계 6개 지역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주간지 붐을 일으킨 「한국일보」

「한국일보」는 지난 1954년 장기영이 「태양일보」를 인수해 이를 「한국일보」라는 이름으로 바꿔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1957년부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개최했으며, 1980년대는 서울에서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개최해 전 세계에 방영했다. 「한국일보」는 「뉴욕타임즈」와 「로스엔젤레스타임즈」로부터도 기사를 제공받고 있으며, 영어판으로도 발행되고 있다. 2008년 10월 9일에는 미국의 블룸버그 TV와의 콘텐츠 제휴를 맺고 서울경제 TV를 개국했다. 자매지「주간한국」은 우리나라 주간지의 좋은 성공 사례가 됐고, 1960년대 중반 이후 주간지 붐의 시초가 됐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신문 「국민일보」

「국민일보」는 지난 1988년 12월 10일 조용우 발행·편집인에 의해 석간신문으로 창간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설립한 신문사이나 현재는 독립해 재단법인 국민문회재단에 소속된 민간공익언론이 됐다. 이후 두 차례 조간, 석간으로 전환돼 발행됐다가 2002년 조간으로 최종 변경돼 기존의 32면을 36면으로 증면, 2003년에는 40면으로 확대하고 경제섹션을 신설했다. 한편, 2011년 12월 23일부터 2012년 6월 14일까지 173일간 파업하기도 했다. 현재는 주 196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술, 담배, 유흥업소와 같은 불건전한 광고는 싣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영국인 베델에 의해 창간된 「서울신문」

「서울신문」은 1904년 7월 18일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영국인 베델이 양기탁 등의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창간한 민족지였던 「대한매일신보」가 그 전신이다.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항일논설을 자유롭게 실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일반 민중의 지지도가 높았다. 그러나 1910년부터 「매일신보」로 바뀌어 일본의 조선 침략을 미화하는 논조를 띠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미준정의 정간처분과 함께 경영진을 새로 꾸려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꾸게 된다.

 

「동아일보」 출신 기자들이 모여 창간한 「문화일보」

「문화일보」는 1991년 11월 1일 전직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언론인 이규행과 현대그룹의 후원에 의해 창간된 석간지이다. 창간 당시에는 종합일간지의 허가를 받지 못해 석간인 문화전문지로 출발했다. 현대그룹의 후원을 바탕으로 소설가 박경리씨의 『토지』가 연재됐으며 만화가 김성환 씨에 의해 연재된 4컷 만화 『고바우 영감』도 인기를 끌었다. 1995년 7월 종합지로 전환하면서 국내 최초로 오피니언면을 만들어 국내의 많은 필진을 고용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왔다. 그러던 1998년 우리나라가 IMF의 유동성위기를 겪을 당시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돼 독립경영체제가 됐다. 1999년 11월부터 지면을 살구색 종이로 바꿔 발행하고 있다.

 

세계의 다양한 언론사와 자매결연한 「세계일보」

「세계일보」는 1989년 2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지금의 통일교 재단에 의해 창간됐다. 「세계일보」의 창간 이념은 ‘굴절되지 않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과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도하는 것’으로서, 현재 「UPI통신」, 미국의 「워싱턴 타임즈」, 중동의 「미들이스트 타임즈」, 일본의 「세카이닛포」, 중남미의 「티엠포스 델 문도」를 자매지로 둬 세계의 다양한 언론사와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 사업으로는 ‘세계문학상’, ‘세계일보 음악 콩쿨’, 한국기원 소속 기사들이 출전하는 ‘기성전’, ‘세계농업기술상’ 등을 개최한다.

 

1883년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 1896년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 이후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역사를 기록해온 신문.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위기에 직면한 종이신문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지만 끊임없는 쇄신을 통해 신문 고유의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대학언론인 우리신문의 평가는 젊은 세대의 기성언론에 대한 인식을 알아봤다는 점에서 많은 의의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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