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부국장이 됐을 때만 해도 나는 ‘안살림꾼’인 내 일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업무가 많은 이 직책이, 그 권한의 크기만큼 설명과 설득까지 해야 할 줄은 몰랐다. 하긴 애초에 국장단 임명도 신임투표에서 구성원의 ‘동의’을 거쳐야했고, 일부 고유 업무를 제외하면 대부분 의사결정은 그 추진배경에 대한 설명이 짧게나마 있은 후에야 진행하는 식이었다. 이를 두고 타대학 모 편집장들은 “민주적이시네요”라고 평했다.
그런데 짧은 감상에 불과한 그 한마디가 날 괴롭히며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적어도 부러움이나 칭찬의 의미는 아니다. ‘춘추가 민주적인 편이라고?’ 조직과 직급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 사람들과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발전계획회의나 지면쇄신회의, 신임투표 등 춘추의 객관적 구조상 이는 사실이고 형식적이라도 이런 동의 또는 거부의 과정들은 다른 학보사, 언론사와 비교를 해봐도 춘추의 특징이다.
하나하나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도 하고 때론 일일이 답해주다 집중을 요하는 본업무에 지장을 줄 때도 많았다.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게 만들거나 공지를 제대로 읽지 않고 물어보는 구성원들은 나를 지치게 했고 평소 의견도 안 내면서 의사결정에 이러쿵저러쿵 불만이 많은 구성원들때문에 서로 감정상하기 일쑤였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명언은, ‘이건 비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모 불평이었다.
업무적 스트레스보다 더하면 더한 이런 관계 속에서의 긴장감과 섭섭함 때문일까. 내색은 안했지만 신속함과 효율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일반 조직처럼 지시하면 ‘믿고 따라주면 안되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솔직히 없지 않다. 뒤바꿔말하면, ‘결정 자체만으로는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라며 홀로 문답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 결과보다 과정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역시 설득은 필요하구나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도, 다수가 정답이라는 법도 없고 설득이라기 보단 하나의 확인작업인 경우가 많다고 해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몇몇 일들은 뒤탈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전구성원과 나누는 최소한의 소통이자 존중이기도 했다. 기자들과 아웅다웅하던 그 때가 벌써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한 학기를 돌아본 후 조심스레 희망사항을 말하자면 이렇다. “쌍방합의는 어렵더라도 쌍방존중까지는, 안될까?” 조직치곤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에서, 앞으로 무수한 설득을 해나가야하는 자들의 고충을 이해해본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래주기를. 설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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