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주말,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는 한가한 오후, 아들은 <무한도전>이 보고 싶다. 아버지는 <불후의 명곡>을 보고 싶다. 애석하게도, TV는 한대 밖에 없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우리는 <불후의 명곡>을 봐야한다, 혹은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해야 한다. TV 채널의 결정권자는 아버지이다.
 이러한 일이 생겨나는 것은 가정 내의 권력이 아버지에게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은 보통 가정의 밖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주로 경제적 문제-을 처리하는 가부장의 역할을 아버지가 맡으며 생겨난다. 가정을 대표하는 하나의 표상으로서의 가부장은 이렇게 태어난다.
 연세대 안에서의 가부장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일 것이다. 총학생회장단과 총여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회장, 각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구성되어있는 중운위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마다 모여 학내의 문제들을 논의한다. 이 중운위 회의의 의결사항은 상시적인 회의체 중 가장 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소위 ‘민주집중제’라는 틀에서 운영되는 학생회 체계 안에서  중운위를 견제할 수 있는 다른 학생 기구는 없다.
 중운위가 이렇듯 학생사회에서 큰 결정권을 갖게 된 이유는 학교 본부, 그리고 사회와 싸워 학생 공공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가장 정당한 방식인 투표를 통해 학생들의 대표가 된 학생회는 학생사회의 발전과 전사회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6월 항쟁으로 확보된 제도적 민주주의의 건설부터 사립대학재단의 재정투명화까지, 학생사회의 건전성은 학생회의 싸움으로 사회적으로 증명되어왔다.
 하지만, 지금의 중운위의 모습은 학교와 사회에서 학생의 이익을 확충하려 하지 않는 듯하다. 되레, 그들은 학생사회 안의 권력 혹은 학생회비를 제로섬(zero-sum)게임의 영역에 두고 기존에 갖고 있는 권력과 학생회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생 공공의 이익에 대해 사회와 학교본부에 새로운 영역을 만들려 하는 움직임보다는 기존의 권력을 이용하여 더 쉬운 길을 가려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공익적 활동을 지원하는 성격에서 만들어진 특별활동지원비(2013년 개정 이전 특공비, 이하 특활비)의 지급심사에서 이러한 문제는 단적으로 드러낸다. 특활비는 다양한 학생들의 역량을 인정하고 지원하여 연세학생사회의 움직임을 더욱 긍정적이고 역동적으로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심사된 특활비는 기존의 의미보다 중운위 단위들의 사업 진행비로 사용되는 비율이 훨씬 크다. 중운위 단위들은 학생회비의 일정비율을 학생회 운영비용으로 수령함에도 특활비를 사용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올해 학생회비 자율납부로 인해 학생회비 수납액이 급격하게 낮아지며 회의 안에서  중운위 단위별 학생회비를 우선으로 배분하자는 논의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특활비를 우선배분하고, 학생회별 학생회비를 나누는 기존의 원칙을 거꾸로 바꾸는 것으로 심해져가는 중운위의 이기심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사회는 학생회로 대표된다. 하지만, 학생회가 학생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이제까지 학생사회 전반에 관심을 가졌던 중운위는 이제 중운위가 학생사회의 전부인 양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데 정작, 학생회비의 문제에 관해 지난 번 소집되었던 비상중운위는 참석자가 개회 기준인원수에 미달되어 개회되지 못했다. 이는 권위 있는 의결체계에 참여하는 일원으로 성의가 없는 것이다. 국회 출석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무책임한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회의에 참여해서도 속기를 지워달라고 하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로 중운위의 회의 분위기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더 나아가, 2013년도 학생사회의 대표적 의제였던, 등록금과 자유전공 폐지 문제에 있어서 보다 특활비 논의에 더 열심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중운위는 학생사회의 의견을 수합해 하나의 공론을 만들어 학생사회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것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특활비 심사에 한마디씩 하는 것을 더 즐거워하는 것만 같다.
 2013년의 중운위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기억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중운위는 폭력가장 같은 모습이다. 우리 학생들을 위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 말했더니 그 권력은 어째서 학생들을 향하는 것인가?


*이번주 백양로는 투고자가 익명을 원했으므로 필자의 이름과 사진을 생략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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