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기 바로 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아성찰을 위한 인도 여행이 유행했다. 수많은 언어, 다양한 문화, 엄청난 빈부격차, 갠지스 강, 인간이 다니는 길을 함께 걸어 다니는 동물들. 분명 인도는 많은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나라였다. 자신을 믿지 못해 스스로가 싫어져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던 작년의 나도 막연히 ‘생각’을 하기 위해 인도 여행을 계획했다. 떠나겠다는 생각이 워낙 강렬했던 탓인지 종종 보이는 성폭행이나 각종 질병이 성행한다는 인터넷 기사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예방접종같은 기본적인 대비도 하지 않은 상태로, 혼자, 계획된 일정들도 모두 뒤로한 채, 인도로 향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인도 여행의 첫 도시 델리에 내렸을 때는 숙소에서 거리로 나가는 것에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 아무런 제재없이 돌아다니는 커다란 개들과 감상할 틈도 주지 않고 들러붙는 흥정꾼들에 지나치게 더러운 거리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 나라에서 무엇을 느끼고 간다는 것인지 떠나기 전에 읽었던 여행 서적들이 원망되는 순간이었다. 운 좋게도 그 날 점심, 역시 혼자 여행 온 한국인을 만나 델리에서의 일정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 때서야 인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갠지스 강의 도시 바라나시는 각자의 고민들을 안고 혼자 이국땅을 찾은 각국의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 무척 많았는데, 나름의 고민들과 함께 같은 곳으로 떠나온 이들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우울감과 고민의 덩어리들이 한껏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서로 말은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어도 왠지 비슷한 감정을 나누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하나하나가 위로였다. 머리 위에 새가 앉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를 얹은 채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소들은 말없이 나를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떠오르게 했다. 남들이 보건 말건 옷을 홀딱 벗고 갠지스 강에 몸을 씻는 아저씨들에게서는 관계 안에서 지쳐가던 내가 보였다. 이전의 나는 내 몸을 씻기 이전에 남들의 시선을 살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며 뭐라도 도와주려는 인도인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는 나도 내 감정에 좀 더 충실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상과 관계들에서 벗어난 20여 일은 아직도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과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난 후, 이 느낌은 모든 일에 중심이 됐다. 중심이 생기니 많은 일들이 편해지고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지금은 작년엔 느껴보지 못한, 딱히 부족할 것 없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모든 감정에 앞서 사랑해라, 나를.
 

정기현  미디어국 부장
prink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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