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문사 편집국장을 마치고 드디어 이른바 ‘탈춘추’ 생활을 한창 즐기던 어느 날 「연세춘추」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연세춘추호외 발행에 대한 대자보였다. 마침 이날 오랜만에 현직 기자단과 만나 호외사태까지의 일련의 과정에 대해 속 깊은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현직 기자단의 근심을 피부로 느끼면서 한때 우리신문사에 몸담았던 한 명으로서 그 누구보다 안타까웠다.

한동안 해묵은 여러 사연들이 결국 곪아터졌구나. 처음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 것은 학교 측의 티끌만한 지원만이 아니었다. 독자의 무관심도 아니었다. 바로 이번 기회에 「연세춘추」를 비롯한 대학언론이 독자들에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라는, 오죽 「연세춘추」가 ‘거지’같았으면 그랬겠냐는 시덥지 않은 ‘독자의 관심’ 코스프레가 이들의 가슴에 사무치는 말들로 다가왔다.

이에 대해 기자 시절 독자들에게 나름 용기 내어 한마디 한 적 있다. 우리는 12첩 반상을 차려놓아도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고.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책하는 대학언론의 모습이 내심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면을 통해 실명으로 외쳤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그 밥상이 누군가에게는 12첩 반상은커녕 간장 종지와 꽁보리밥 한 공기조차 안됐을지라도.

「연세춘추」의 ‘춘추를 읽고’ 꼭지에서는 최대한 매 호수마다 독자들의 평가를 받고자 각고의 노력을 서슴지 않았다. 독자들의 따끔한 평가와 함께 소통을 기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SNS 세대에게 원고지 5매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나보다. 연세춘추에게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글은커녕 참여율조차 저조했다.

사실 지금이야말로 독자투고와 독자의 기사제보라는 소중한 소통의 창구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대학교 신문사, 더 나아가 대학언론가에서 독자투고 혹은 기사제보는 배부른 소리가 돼버렸다. 심지어 대학신문 중에는 학교 홍보지의 연장선으로 전락해버린 경우도 허다했다. 시대가 좋아져 익명을 통한 취재원 보호가 당연한 와중에도 그 찰나의 기회조차 잡을 만한 여유도, 용기도 없는 소시민적 자세가 발현됐다.

설상가상으로 학생들의 ‘독자’ 코스프레는 헛웃음을 자아냈다. 「연세춘추」가 혹자가 말한 바와 같이 ‘취재연습, 기사작성연습, 편집 연습한 결과물’이라고 마냥 치부하는 것은 혹자의 너무나 좁은 안목과 찰나의 판단에서 우러나온 설(說)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장 지난 2012학년도 2학기에 12회 발행된 「연세춘추」 전체 기사들 중 각 발행호의 1면에 실린 기사 3~4개만 읽었어도 연세사회가 얼마만큼 변했는지 알 수 있기에 쉽사리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대학교는 매번 신임 총장 취임과 함께 진행되는 수많은 학교 안팎 사안들에 의해 거침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학생 기자단은 발 빠르게, 학내 구성원 누구보다 안팎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자 주간교수진과 함께 씨름하며 매주 밤새 노력한다. 이들 역시 누군가와 같은 학생의 신분임에도 학생기자라는 일종의 기회를 통해 그 책임과 소명을 다하고자 외줄타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크게 13학번 이후 재수강 제도 금지와 대학평가 관련 기사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지난 2012학년도 2학기 「연세춘추」 개강호 1면에는 정갑영 총장의 재수강 제도에 대한 강도 높은 개편 의지를 가장 먼저 다뤘다. 또한 일부 언론사의 대학평가 결과에서 우리대학교의 전국 종합대학 1위 수성에 학교 본부가 자축하고 있는 와중에도 학내외 독자들의 여론을 수렴해 이번 계기를 통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한참 후에 보도된 기성언론 기사가 SNS 담벼락을 하루 종일 뒤덮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고 「연세춘추」 기사 한번 읽어보지 않은 채 ‘「연세춘추」 직무유기론적 관점’에서 뻔뻔하게 접근했다. 익명이라는 무한방패 아래 비판 아닌 ‘비난’으로 다가선 이들이 넘쳐났다. 학생과 학교, 그리고 교직원 모두의 여론을 수렴해 겸손의 자세를 요구한 용기 있는 목소리는 ‘연세춘추 운영비 30%으로 삭감’이라는 통보와 함께 현실화됐다. 그럼에도 현직 기자단들은 묵묵히 지금 이 순간에도 심층적으로 학내외 사안들을 다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느 언론이 그렇듯 기자가 아무리 많아도 모든 구성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3만 연세인의 입장을 담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도, 단어 하나를 지면에 싣기에도 ‘조심’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가갈 수밖에 없다.

기자단은 현재 상황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알길 바랄 뿐, 독자들에게 더 이상의 ‘힐링’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최근 힐링에 대한 열망을 외치는 바깥의 사람들이 우리신문사에 가시관을 씌웠기에 이 상황이 너무도 슬프다. 우리 사회의 그 어느 연사가 주저앉혀진 청춘을 가리켜,‘스스로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 자중의 기회로 여기라’며 비수를 꽂는가.

 

유승오(경영·10)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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