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콘서트홀 개관에 즈음하여

동물은 각자의 고유 영역에 표시를 한다. 대부분은 특정 장소에 분비물을 묻히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며 동물 세계의 긴장 어린 권력 관계에서 상호간 영역이 인정된다. 만약 영역 침범이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레 힘 센 놈이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의 세계는 이와 사뭇 다르다. 물론 짐승들처럼 배변행위를 통해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영역 표시는 이성적이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속해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고, 그 영역 안에서는 그들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디를 가나 국문학도에게는 맞춤법 오류 수정을 부탁하고 법학도에게는 판례를 물어보며 컴퓨터공학도에게는 컴퓨터 수리에 관해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는 자신의 이름 옆에 붙은 전공이 타인에게 명확한 ‘영역 표시’로서 작용한다는 말이 된다. 이를 더 극명히 드러내는 사례는 음악대학에 있다. 타 단과대 학생들은, 성악과 학생들은 노래를 잘 할 것이라는, 학생들은 악기를 잘 다룰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민감한 사안은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과 음악을 취미로 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에 있다. 한국인이라면 수준 차이는 있을지라도 한국어로 된 글을 쓸 수 있듯이 인간은 실력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뮤지킹(음악하기, musicking)을 할 수 있다. 뮤지킹의 범위는 실제로 매우 넓게 나타나지만, 이를 연주 활동으로 한정한다면 연주 공간, 설비, 시간과 같은 유한한 재화로 인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아래 백기관)이 백양콘서트홀로 리모델링된 이후에 이 문제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리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공연예술분과(아래 공연분과)에 속한 중앙동아리는 가장 높은 비중인 전체의 약 30%(74개 중 20개)를 차지한다. 더불어 각 단과대별로 활동하고 있는 공연 동아리까지 합친다면 저 비중은 더 늘어난다. 공연분과 동아리의 명맥은 말 그대로 ‘공연’을 통해 유지되는데, 행사를 치르기에 마땅한 공간은 학내에 대강당과 백기관이 전부이다. 설상가상으로 백기관 대관마저 실패하면 행사를 치르기에 부담스러운 대강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학교가 관현악 및 합창과 같은 소위 ‘클래식’ 분야의 동아리를 제외한 공연 예술 동아리(춤, 뮤지컬, 국악, 아카펠라 등)에게는 대관을 불허하고 해외 유수의 클래식 음악인들을 초청하여 백양콘서트홀의 성격을 전문적인 클래식 연주홀로 규정하겠다는 포부까지 밝힌 상황에서, 드넓은 음악 스펙트럼에 속한 공연예술 동아리의 여건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학교 총무처에서는 백양콘서트홀의 대관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길 예정이라는 입장까지 밝히고 있다. 외부 업체에 대관을 맡기면 대관료가 뛴다는 사실은 매우 상식적이다. 실례로, 공연 1회 기준으로 대관료를 살펴봤을 때 2005년에 리모델링을 한 서강대학교의 메리홀은 150만원, 2009년에 개관한 이화여대의 삼성홀은 170만원에서 300만원까지이다. 반면 리모델링 이전의 백기관 대관료는 25만원이다. 향후 대관료 책정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학생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아니, 백양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열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인 것이 공연분과 동아리들이 처한 진정한 어려움이다.

  그들은 공연하고 싶다.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유지하고, 그들 동아리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싶다. 하지만 ‘예술의전당과 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콘서트홀이 될’ 백양콘서트홀의 대관이 제한됨에 따라 연세대학교, 아니 대한민국의 풀뿌리 예술이 시들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비록 전문가에 비해 스케일이 초라해 보이지만 폭 넓은 음악의 스펙트럼을 구성하는 이들은 음악에 대한 일반인의 폭 넓은 관심을 대변하는 ‘위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들을 음악의 모든 부분의 잠재적 소비자라고 생각했을 때, 청중이 없는 음악은 과연 어디 있으며, 그 청중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학교는 이 결정에 대하여 학생 사회의 입장에서 재고하였으면 한다.

 

송슬기(국문·09)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