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마주하게 되는 자연의 위로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다. 일 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당신, 수고 많았다. 그런 당신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얼어붙었을 당신의 몸과 마음을 서울의 궁궐 길이 ‘힐링’해줄 것이다. 북적이는 도심에서 벗어나 마냥 걸어보자. 혼자여도 좋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다. 창경궁에서 경복궁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연말의 우울함은 어느새 녹아내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서 오른쪽으로 걷는다.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돌담길이 펼쳐진다. 쭉 뻗은 돌담길엔 끝이 없을 것만 같다. 한해의 끝자락에 선 당신에게 묘한 위로가 된다. 따뜻한 캔 음료를 쥔 채 걷다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간다. 왼편에 심어진 가로수는 아련한 정취를 더한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걷다 보면 당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질지도 모른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돌담길엔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한 해 동안 쌓인 떼와 먼지도 함께 씻겨나갈 테니까.


한옥의 정취를 따라서

돌담길이 끝나는 곳엔 빼어난 후원으로 유명한 창덕궁이 자리하고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통과해 걸어 올라가다보면 정겨운 한옥이 한두 채씩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북촌 한옥마을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유로 '북촌(North Village)'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지역이다. 서울시가 북촌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지정한 북촌8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좋다. 고즈넉한 골목길과 한옥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겼다면 ‘북촌 전망대’라고 쓰인 표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자. 탁 트인 하늘과 삼청동 전경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북촌 전망대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삼청동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음식점과 카페가 양쪽에 늘어서있다. 이국적 매력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진, 주인이 직접 고안한 메뉴를 선보이는 카페들은 프랜차이즈에 질린 우리들에게 그만의 고유한 매력을 뽐낸다. 삼청동 카페가 즐비한 거리를 따라 내려오면 또 다른 돌담길을 마주하게 되는데, 길을 따라 걸으면 경복궁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걸어 나오는 옆문으로 들어가면 경복궁의 입구에 들어선다. 왼쪽으로는 경복궁 매표소와 광화문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궁이 자리하고 있다. 광화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멀게만 느껴졌던 도심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인파와 차량으로 가득한 도로를 보며 한옥마을과 삼청동의 모습이 꿈이었던 것처럼 다가온다. 이렇듯 한옥마을과 현대적 카페, 고궁과 도심 그 접점에 이 길이 있다.

흔히들 궁궐 길 하면 ‘덕수궁 돌담길’을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꼭 그것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고, 때로는 자연 속에서 취하고 싶다면 주변 고궁에 시선을 돌리기도 해보자. 돌담 사이사이에 걸쳐진 자연을 바라보다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지쳐있던 당신의 심신이 ‘힐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 문다은 박유빈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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