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건, 조두순 사건,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어머니를 살해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사건. 이 사건들은 최근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들이다. 이 모든 사건들의 소송을 맡은 여성·아동 전문 변호사인 이명숙 변호사. 내 가족, 내 딸을 대하는 마음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녀는 지난 1990년 변호사가 됐다. 당시에는 아동폭력방지법이나 성매매방지법, 성폭력 특별법, 그리고 가정폭력 방지법 등 여성·아동을 위한 법률이 전혀 제정돼 있지 않는 ‘무방비 상태’였다. 또한 그 당시 전국에 존재하는 여성 변호사는 갓 10명에 그쳤었다. 때문에 이 변호사는 여성·아동 단체들로부터 많은 소송 의뢰를 받게 됐다. 여성·아동 전문 변호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여성, 아동과 관련된 소송을 접할수록 그들이 굉장히 법의 사각지대에 취약한 상태로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떤 변호사라도 그들을 만났다면 마음이 아파 변호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로 뛰는 변호사


그녀는 지난 2008년 5월에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계기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녀는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해 돌을 하나하나씩 들어내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서 한 명 한 명씩 사람들을 변호해 구해내는 자신의 모습과 닮은 점을 발견했다. 그녀는 뉴스를 통해 복구 현장을 지켜보며 “하나하나씩 해결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집을 건축하고 무너졌을 경우에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재빨리 피난시키고 구하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소송 하나를 해결해 한 사람씩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과 제도를 개선해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소송과 상담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 때부터 이 변호사는 사무실에 앉아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발로 뛰면서 법과 제도를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발로 뛰는 변호사’가 된 그녀는 사법연수원 강의, 세미나, 각 종 방송활동과 토론회 등을 통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그녀는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다보면 언젠가는 법과 제도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인권이사


‘발로 뛰는’ 그녀에게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대한변호사협회의 꽃이라고 불리는 인권이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온 것이다. 이 변호사는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변호사협회의 인권이사 일을 해왔다. 이 변호사는 인권이사로서 전국 경찰청에 고문 변호사 마련, 각종 여성단체들을 위한 변호인단 형성, 성폭력 관련 매뉴얼을 만드는 등 사회 시스템 변화의 기반을 닦는 일들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해 여성·아동뿐만 아니라 위안부, 새터민, 환경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 변호하고 있다. 인권이사로서 그녀는 여성과 아동의 범주를 뛰어넘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최초로 일본변호사협회와 위안부피해자 관련 MOU 체결하고 새터민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각국 대사관들을 만나는 일들을 진행했다. 그녀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인권이사로 일했기 때문에 이명숙 변호사 개인이었다면 못했을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중 하나가 조두순 사건의 소송이기도 하다. 이 변호사는 “조두순 사건 소송을 맡을 당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원, 경찰청, 법률구조공단, 병원들의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인권이사라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닥불 같은 대응은 이제 그만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에 대해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한다. 지난 9월 학업성적을 이유로 학대받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가해 학생은 존속살인 혐의 등을 이유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가해 학생도 심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경우 미국과 호주에서는 정당방위로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행법상 죄가 인정된다. 이 사건은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형량을 선고하면서 가해 학생에 대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려 이슈화되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이 변호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며 판결하는 판사가 없도록, 또한 제2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이 변호사는 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교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우리나라는 거세, 전자 발찌, 신상공개와 같은 강력처벌을 하는 것으로 성폭력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한 그녀는 “전체 성폭력 범죄 사건들 중 신고율은 10%에 불과하다”며 “가해자 처벌 제도는 전체 성폭행범들 중에서 극소수만을 처벌할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강력처벌법은 실질적으로 전체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며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녀는 “거세 및 전자발찌와 같은 극약처방은 국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전시행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 변호사는 “신고되지 않은 범죄자들에 대해 어떻게 범죄를 증명해 처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많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때”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사건이 이슈화되는 며칠 동안에만 대안 마련에 급급해 하는 것은 순간 반짝거리는 모닥불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만 잠깐 해결하려는 졸속행정이 아니라 전문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연구와 대안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교정 교육과 피해자에 대한 빠른 치료도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타인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일하느라 정작 자신의 복지에는 둔감한 그녀는 백화점에 갈 시간도,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한 번 놀러갈 시간도 부족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행복하냐’는 질문에 “글쎄요. 물음표예요”라고 답하면서도 ‘직업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냐’는 질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번도 없다”고 답하는 그녀.
‘엄마’로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녀가 담당하는 사건의 피해자들도 모두 자신의 아이들 같기에 이 변호사는 오늘도 그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녀가 진행하는 대부분의 소송은 무료소송이다. “당장 돈으로 받는 보수보다는 우리 사회가 바뀌어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고귀한 보수라고 생각한다”는 그녀 덕분에 오늘도 우리사회는 조금 더 밝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글 홍근혜 기자 gnelism@yonsei.ac.kr
사진 연세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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