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자를 마음에 지녀, 잘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박석무 저, 『유배지에서 보내는 편지』 中

이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생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유배지에서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2일 ‘東洋고전, 2012년을 말하다’의 다섯 번째 연사로 서기 위해 우리대학교를 찾았다. 이날은 추석연휴와 개천절 사이에 낀 날임에도 우리대학교 대강당 1층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강연에 참석했다. 이날의 주제는 ‘시대를 바꾼 고민의 힘, 『목민심서』’였다.

250년 만에 세계에 빛나다

지난 2011년 유네스코는 다산 정약용을 헤르만 헤세, 장자크 루소, 클로드 드뷔시와 더불어 ‘2012년을 기념할 인물’로 선정했다. 교육・문화・과학을 통해 각국의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룩하자는 유네스코의 정신을 보여준 정약용의 탄생 25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정약용은 지난 1997년 12월,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또다시 유네스코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이처럼 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약용의 사상에는 어떤 고민과 정신이 담겨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목민심서』에서 엿볼 수 있다.
정약용은 생전 500여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그중 각각 6조항씩 12편의 내용으로 구성된 『목민심서』는 그의 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 관료들의 부패함을 비판하고 올바른 행동강령을 논한 『목민심서』에 대해 박 이사장은 “왜 우리가 이 시대에 정약용의 사상에 주목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목민심서』를 읽었는데도 정약용에 미치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미친 사람”이라며 강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愛民之本, 在於節用, 節用之本, 在於儉. 儉而後能廉, 廉而後能慈, 儉者, 牧民之首務也.
“애민의 근본은 쓰임을 절약하는 데에 있고, 절용의 근본은 검소한 데에 있다. 검소한 뒤에 능히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뒤에 능히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한 것은 목민에 있어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목민심서』 제 2편 부임6조 中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정약용은 평소 애민(哀愍), 절용(節用), 검소(儉素), 청렴(淸廉), 자애(慈愛), 목민(牧民) 등 공직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박 이사장은 “그의 이러한 고민은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처럼『목민심서』는 지금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연의 취지를 밝혔다.

청렴은 가장 큰 장사이니라

이날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에서 청렴과 애민 그리고 절용에 대한 구절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약용이 말하는 공직자의 자세 중 ‘청심’(淸心)을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꼽았다.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原,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청렴(淸廉)은 수령의 본무요, 모든 선(善)의 근원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민심서』 이전6편 제1편 속리 中

이는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국민의 기대와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더라도, 비리를 통해 취하게 될 이득을 생각하면 부정부패를 남는 장사로 여기게 된다. 이처럼 잦은 청탁의 유혹과 사사로운 온정을 뿌리친 채 반듯하고 청렴한 공직자로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박 이사장은 다산의 말을 빌려 “청렴이 ‘천하의 큰 장사’이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청렴을 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렴해야 장사가 된다는 이 역설적인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박 이사장은 “청렴하면 과장에서 국장으로, 국장에서 이사장으로, 나아가 제일 윗자리까지도 갈 수 있지만 청렴하지 않으면 반드시 중간에 불명예를 얻고 쫓겨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비리를 저지르더라도 걸리지만 않게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품는 이들에게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의 한 구절을 들려줬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한 일도 아침이면 드러난다(貨賂之行, 誰不秘密, 中夜所行, 朝已昌矣)”

박 이사장은 “뇌물이 오가고 나면 갑자기 자질이 없는 사람이 승진하던지 포상받는 등의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며 “이렇게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만한 일이 일어나면 직접 본 사람이 없어도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며 부정부패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청렴하고 어디부터 부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론에서 보도하는 각종 비리의 수사 과정들을 주시하면, 거물급 인사들이 뇌물 수수혐의에 대해 ‘대가성이 없는 선물’이라며 발뺌을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털끝만큼도 잘못한 점이 없어야 청렴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여자들은 적군들에게 손만 잡혀도 지조를 더럽혔다고 생각해 ‘털끝만큼도’ 자신을 더렵히지 않으려했다”라고 말하며 ‘털끝만큼도’라는 표현이 얼마나 엄격한 말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도다

이어 박 이사장은 “특히 고위공직에 있는 사람일수록 청렴해야한다”고 말했다.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본보기를 보고 따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束吏之本, 在於律己,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行.
“부하를 잘 단속하는 근본은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업무가 잘 진행이 된다. 자기자신의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이행이 되지 않는다.”
- 『목민심서』 제5편 율기6편 中


이 구절은 정약용의 애민정신을 잘 보여준다. 평소에 정약용은 백성이 흙을 전답으로 삼듯, 아전들이 백성을 전답으로 삼아 세금을 과도하게 걷는 등의 부정부패를 걱정했다. 정약용은 아전들을 엄하게 단속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에게 엄격함을 요구해 본보기가 되려했다. 박 이사장은 “굳이 공직에서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자식들이 공부하길 바란다면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먼저 공하는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타인을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처럼 자신이 바르게 행동한다면 저절로 주변사람들이 이를 본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타인도 똑같이 물들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절용(節用)에 있으니

이어 박 이사장은 청중들에게 정약용의 투철한 애민사상을 보여주는 한 일화를 들려줬다. 정약용이 곡산부사로 임명된 직후, 전 곡산부사의 횡포로 이계심이라는 백성이 난을 일으켰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백성이 난을 일으키는 것은 중죄에 해당하는 일로 모든 사람들이 정약용에게 이계심을 벌할 것을 청했다. 그러나 후에 이계심이 백성들의 고통에 관한 십여 조목을 기록해 바치고 자수하자 오히려 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관이 현명해지지 않는 까닭은 민이 제 몸을 꾀하는 데만 재간을 부리고 관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관이 천금으로 보상을 해주어야한다(官所以不明者, 民工於謀身, 不以瘼犯官也)”

그렇다면 공직자들이 정약용이 말한 애민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바로 절용(節用)정신을 갖추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아껴쓰는 것이야말로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라며 다음과 같이 그 해답을 제시했다.

私用之節 夫人能之 公庫之節 民鮮能之 視公如私 斯賢牧也.
“개인의 돈을 절약하는 것은 사람마다 능히 할 수 있으나 공공의 돈을 절약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공의 돈 보기를 개인의 돈 보기처럼 한다면 그는 곧 어진 목민관이다.”
- 『목민심서』 제5편 율기6편 中

박 이사장은 절용의 정신에 빗대어 약 2년 전, 7만5천 제곱미터의 부지에 3천억 원 상당의 호화청사를 지었던 성남시청을 비판했다. 그들은 왜 국민들의 세금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했을까. 이는 바로 그들이 세금을 중요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만약 공공기관들이 세금을 개인의 돈처럼 생각했다면 이런 낭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공직자들이 애민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더군다나 이런 짓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절용의 정신을 다시한번 더 강조했다.

『목민심서』, 2012년을 말하다

『목민심서』가 저술된 지 이미 200년이 지났고 그동안 시대도 많이 변했다.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가 이 시대에도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정계에서는 부정부패가 일어나고 있고 국가의 예산낭비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각종 고질적 문제들의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하는가’에 대한 온 국민의 고민에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후엔 많은 사람들이 박 이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청중은 “청렴해야하는 공직자의 자세와 가족들의 행복이 서로 상충될 때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이는 미래가 불행하느냐 현재가 불행하느냐의 차이”라며 “현재 불행하다고 부정한 일을 하게 되면 결국 그 부정한 일이 드러나 후에 가족들이 더 불행해지겠지만 현재의 불행을 참으면 미래에는 가족도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청중은 “정약용의 사상을 알기 위한 입문서를 권해달라”고 하자 박 이사장은 “부모는 자식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며 정약용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각색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추천했다.

이형민(경영・10)씨는 “요즘 대선도 다가오면서 공직자의 자세에 관심이 있었다”며 “뿐만 아니라 이 강연을 통해 앞으로 지도자의 자리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반면 최제훈(42)씨는 “과거에 지어진 목민심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만 딱히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며 “『목민심서』가 현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더 언급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 오는 12월 국민들이 어떤 지도자를 뽑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4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목민심서』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 대선주자들은 앞다투어 어떻게 나라를 ‘잘’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마음에만 담고 있는 생각은 무용(無用)하다’고 말했다. 만약 정약용이 그의 사상을 글로만 남겼다면 아마 『목민심서』가 현대인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목민심서』가 현대에 의의가 있는 이유는 200여년 전 정약용이 실제로 공직자 생활을 하면서 그의 정신을 직접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선주자들이 얼마나 좋은 정책을 내놓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빛 좋은 공략들이 아닌 바로 실천이다.

언제나 올바른 치국(治國)의 방법에 대해 고민했던 정약용. 그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목민심서』의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더불어 연세인들이 후에 공직에 나아갔을 때, 정약용과 같은 정신으로 언제나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잊지말아야할 것이다.


글 최지은 기자 hotgirlj@yonsei.ac.kr
사진 최지은 기자 choicho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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