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가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마저도 무의미한 것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지치고 우울한” 권태감

샌드위치 연휴로 유난히 길었던 명절이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명절 끝에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마음에도 찬바람이 스며든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울감을 토로한다. 하지만 지치고 외로운 이 기분을 친구들은 ‘가을 타는 것뿐’이라고 일축한다. 가을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과 권태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 확실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옳다. 분명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84년에 발표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밀란 쿤데라는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한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44년 오늘인 10월 15일 출생한 니체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로 시작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대표적인 사유인 ‘영원회귀’에서 출발한다. 밀란 쿤데라는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라고 하면서 인생의 무의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원히 돌아오고 되풀이되리라!

좀 더 정확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시간이라는 둥근 고리 때문에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돌아온다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 사상을 이야기한다. 니체는 ‘순간’을 의미하는 성문 앞뒤로 시간이라는 둥근 길이 뻗어있다고 전제하면서 “이 거미와 저기 저 달빛, (중략) 여기 이 길에 앉아 있는 나와 너, 우리 모두는 이미 존재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되돌아와 우리 앞에 있는 또 다른 저 골목길, 그 길고도 소름 끼치는 골목길을 달려가야 하지 않는가. 우리들은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니체극장」에 따르면, 영원회귀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아, 한 번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들판에서 새싹은 자란다는 것이다. 그렇게 똑같은 것이 똑같은 모습으로 한없이, 영원히 되풀이해서 돌아온다고, 모든 것이 거대한 순환을 거듭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영원회귀가 ‘양치기의 목구멍 속으로 뱀이 대가리를 들이미는 것처럼 역겨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왜냐하면 영원회귀를 통해 좋은 것뿐만이 아니라 나쁘고 추악한 고통들까지 함께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삶에서 권태와 고통을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니체는 ‘그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어버리라’고 말한다. 「니체극장」은 이것이 영원회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역겨움을 거부하고 이겨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즉, “영원회귀 앞에서 짓눌리지 않고, ‘좋다, 한 번 더’라고 외치는 것, 어떤 고통도 어떤 시련도 회피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수락하는 것, 그리하여 매번 영원회귀 자체와 결전을 벌이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실연이 만들어 낸 ‘차라투스트라’

그런데 사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가 실연의 고통에 시달리다 영감을 받고 단 열흘 만에 1부를 저술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니체는 ‘루 살로메’라는 러시아여성에게 빠져 여러 번 청혼하고 구애했지만, ‘루 살로메’와 니체의 절친한 친구인 ‘레’는 니체를 배신하고 함께 도망갔다. 이후 그는 아편을 과도하게 흡입해 죽음 직전의 상태까지 갈 만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친구 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니체는 “나의 폭발하는 과대망상증과 상처받은 허영심 때문에 당황할 것 없소. 설사 내가 격한 감정을 못 이겨 어느 날 자살을 한다 하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요”라고 하면서 “나의 고독과 체념을 궁극적인 한계에까지 밀어붙여보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편지를 작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니체는 극도의 고통을 창조의 영감으로 승화시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탄생시키게 됐다.

니체는 영원히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고, 우리가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저 기쁘게 ‘한 번 더’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루 살로메를 향한 사랑이 끔찍한 고통을 가져온다 해도, 그 기쁨을 반복해서 맛볼 수 있다면 고통들을 받아들이고 맞서겠다는 것이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처럼 자연 속의 모든 것은 영원히 회귀한다. 그러나 이 고통과 기쁨의 무한한 반복 속에서 우리가 권태만을 느끼고 있을지, 아니면 다가올 기쁨을 향해 고통에 맞설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다시 돌아올 봄을 위해, 차가운 가을과 겨울은 어떻게 보낼까.

글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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