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을 때마다 우리를 졸졸 따라오는 것이 있다. 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우리를 계속 따라오는 존재, 바로 그림자. 우리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도 존재한다.

억눌려 감춰진 마음

지난 2007년에 발표된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기독교대학원 남소현의 논문 「C.G.Jung의 분석심리학 관점으로 본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작품 분석」에 따르면 융은 그림자를 ‘감추어진, 억압된, 대개 열등한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인격’이라고 정의했다. 그림자는 의식화되길 기다리고 있는 열등한 인격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자는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림자는 자신이 정말 싫어해서 그렇게 되지 않고자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성격을 가졌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왠지 모르게 미운 그 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일상생활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는지. 그런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그림자투사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림자투사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열등한 면모(그림자)를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자신의 인격의 한 부분으로 그림자를 수용하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투사 대상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가 드러났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반응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인데

한편 그림자투사는 정반대 유형인 사람에게 투사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강점과 약점을 함께 가지는데, 개인이 지닌 기능 중 열등한 기능은 우월한 기능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로 반대되는 기능이 발달된 사람은 서로의 열등기능을 상대방에게 투사할 가능성이 높다. 단적인 예로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에게,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게 그림자를 투사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을 ‘혼자만 잘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을 ‘나대는 스타일’, ‘설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서로의 그림자를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열등기능을 투사하게 되면 상대방의 부정적인 모습만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과장된 모습은 자신의 열등기능이 가진 긍정적인 모습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 채 오해만 쌓아감으로써 열등기능을 향상시킬 가능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더욱 커 보이는 그림자

그림자투사는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융연구원 이부영 원장이 쓴 『그림자』에 따르면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란 어떤 집단 성원의 무의식에 같은 성질의 그림자가 형성되어 다른 집단에 투사되는 것이다. 집단이 추구하는 목표가 일방적이고 뚜렷한 것일수록 목표에 어긋나는 요소는 억압되어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통된 그림자를 나눠 가지게 된다.
중세 서양에서 발생했던 ‘마녀사당’도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르네상스가 도래하던 시기에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이 불안했던 지배계층은 마녀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사람들의 그림자가 투사되는 것을 부추겼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쾌락추구, 성적욕구 등이 억압됐던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부추김에 자극받아 무의식에 억압돼 있던 집단적 그림자를 마녀로 몰린 여자에게 투사했다. 그 결과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하고 불에 타 죽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됐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일상에서 보는 그림자가 그렇듯 마음속의 그림자와 떨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림자의 존재와 그림자투사가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림자투사가 일어나는 것을 인식해 자신의 그림자를 아는 것이 자신의 부족한 면모를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서로 상반된 기능이 발달된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림자투사로 나타난 자신의 열등기능을 서로 보완시켜 나간다면 상호투사 없이 함께 발전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괜히 얄밉게 느껴져 미워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당신이 보기에는 화가 날 정도로 못마땅한데 주변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모두 좋아하진 않았는가? 혹시 결함이 없는 사람에게 당신의 그림자를 투사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내비친 이유는 아닐까.

※ 이 기사는 『그림자』를 참고해 작성됐습니다.

글 최지은 기자 choicho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