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 통화의 내용이 필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평소 모범생이었던 친구가 소설 저작권 침해로 고소당해 경찰서에 출두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합의금이 300만 원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친구는 ‘일단 합의금부터 마련하자’고 했다. 멋모르고 저지른 일의 대가는 매우 컸다.
조용히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뿐,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특히 연구 윤리가 강조되는 대학에서 논문이나 연구 등을 표절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교육기관에서 발생한 만큼 표절과 같은 저작권 침해문제는 저작권자와 침해자의 합의로 종결된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합의’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표절 자체보다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상당수의 대학들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실태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수 83명이 논문 표절로 적발됐지만 이에 대한 대학들의 조치가 저마다 달랐다. 이들 중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이들은 30여 명이 채 안되고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은근슬쩍 마무리됐다.
그 일례로 지방 사립대의 한 교수는 무려 논문 6편을 표절했으나 정직 3개월에 그쳤고 한 대학에서는 교수18명이 논문을 표절해 전원 파면·해임 조치됐으나재심을 통해 모두 복직됐다. 논문표절로 해임이나 파면이 된 교수는 24명이었고 재임용이 취소된 교수는 5명이었지만, 15명에게는 단순 경고 조치만 취해졌다. 이는 연구 윤리에 대한 1차 관리기관인 대학이 스스로 징계 수위를 결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는 표절을 저지른 교수와 한 식구인 교수들이 결정하는 절차로 이뤄져 매번 교수들의 깊은 우애를 확인하는 수단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대학에서 내부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현재의 관리 감독체제 하에서는 ‘비리를 덮으려는 비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감시와 처벌은 제3의 기관이 행하여야 하고, 논문과 연구의 표절은 해당 대학의 연구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로 자리잡아야 한다. 무식이 지식이 없다는 뜻이라면 무지는 의식이 없는 것이다. 흔히 무지함은 죄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배운 이들의, 유식한 이들의 무지함은 명백한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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