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 위치한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한국사회의 불안과 20대’라는 주제로 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는 예술가, 잡지 편집장, 대학원생 등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20대 패널 세 명의 발언과 문화평론가인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강연으로 이루어졌다. 패널로 참가한 20대들은 각자가 가진 삶의 불안을 호소했고 불안을 제공한 사회와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국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침을 가했다.
좌담회를 통해 동시대의 불안한 풍경들을 잔뜩 목격한 나는 불현듯 무기력해졌다. 우리는 불안하다. 열심히 살아도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청년실업과 주택난은 이제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는 진부하고 당연한 문제가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도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는 우리에게 도전과 창의를 요구한다. 기성세대들은 우리더러 ‘개념’이 없다고 훈수를 두고, ‘개념’에 관심이 없는 우리들은 어느 날 돌아보니 취업 개미가 되거나 잉여 베짱이가 돼있었다. 그 가운데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쿨’(Cool)한 것으로, 소비대중문화는 ‘핫’(Hot)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쓸쓸하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까지 신경써야 하고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몰라 불안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어중간해서 불안하다. 심지어 시대가 기울어 간다. 신자유주의의 종말은 예고됐으나 학계에서마저도 그 뒤에 어떤 체제가 올지 예상하지 못한다. 옛것은 갔으되 새로운 것은 오지 않아 우리는 계속 두려워한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 직업을 가지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어떤 미래를 상정하고 향후 나의 삶을 설계해야 하는지?
백양로를 걷는 것이 불안하다. 학교는 더 이상 우리의 울타리가 돼 주지 못한다. 언제 또 오를지 모르는 등록금에 한숨을 쉬고, 비싼 학식에 울상을 짓는다. 내년부터는 후배들이 신촌에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과·반 자치단체와 동아리들은 신입생 없는 새학기가 걱정이다. 어느 날인가에는 내가 다니는 학교의 학사제도가 바뀐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학생들과의 논의를 거치지 않고 바뀐 학사제도는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한다. 이토록 경쟁이 전부가 된 사회에서, 재수강 제도는 학생들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교육권리가 아닌가. 그러나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이 모든 일들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대학이 중등교육기관과 다른 점은 학생이 자신의 학업과 생활에 대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단지 경쟁 논리에 입각해 학생들을 희생시키는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그의 저서 『불안증폭사회』에서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비극적인 진단이 대학사회에 여지없이 들어맞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불안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교육과 자치, 그리고 소통이다.

이수현(국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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