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어느 봄날일테지만 연세대학교 웹진인 『연두』에게는 특별한 날이다. 우리대학교에서 강의평가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왔던 『연두』가 새로운 변신을 꾀한다. 과외중개서비스를 통해서 말이다. 오는 4월 10일, 과외서비스를 런칭할 『연두』는, 그리고 『연두』의 모태가 된 「연세춘추」는 과연 어떤 곳일까. 한 번 알아보자.

 

그대 가는 길이 역사다, 「연세춘추」

 

 

1935년 9월 1일 「연전타임스」로 발간을 시작한 「연세춘추」는 1957년에 ‘연희춘추’에서 현재의 ‘연세춘추’로 제호를 변경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대부분의 대학 학보사들이 ‘○○학보’ 혹은 ‘○○신문’의 제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자못 특이한 이름이다. 「연세춘추」의 ‘춘추’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춘추라는 이름은 공자의 역사서인 『춘추』와 관련이 있다. 이는 춘분과 추분의 평형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사관을 지니고 역사를 기술한다는 의미다. 즉, ‘연세춘추’란 이름은 이런 정신을 본받아 ‘정론직필’의 자세를 늘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正論直筆’ 정당하고 이치에 맞는 의견이나 주장으로 어떤 사실(事實)을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적겠다는 언론의 사명. 「연세춘추」는 이를 바탕으로 학생, 교수, 교직원의 3주체를 아우르는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은 물론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꾀한다. 물론 이 가치를 지켜나가는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학내 사안이나 사회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일침을 가할 수 있도록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할 무수한 시간들이 있었다. 기성언론처럼 저널리즘을 추구하면서도, 대학언론의 가치인 아카데미즘을 저버릴 수 없기에 정체성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몸부림의 흔적도 그 안에 함께 산재한다.

 

편집권과 인사권 독립을 위해 「연세춘추」를 지우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난 2007년도 2학기, 「연세춘추」 1567호에 벌어진 무제호 사건이다. 이는 1학기에 국장단 선발과 2학기 기획취재부장 임명 과정에서 인사권 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진 문제다. 이에 평소 신문 제작 막바지에 주간의 기사에 대한 지도가 기자단에게 편집권 침해라고 여겨진 점도 한몫했다. 「연세춘추」 제작 시 토요일 오전이 되면 주간 교수는 지면에 실릴 기사를 검토하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국장단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기자나 국장단의 생각과 주간의 의견이 충돌을 빚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2007년 무제호 사태의 경우 두 학기 동안의 인사권 문제에 일상적으로 있어왔던 편집권 문제가 도화선이 돼 발발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연두』 ‘[Cover Story] 1567호 무제호 사건을 기억하며······’ 참고) 결국 기자단은 지난 2004년 서울대 「대학신문」, 지난 2005년 동덕여대 「동덕여대학보」가 그랬던 것처럼 제호 없이 신문을 발행했다. 연세사회는 물론 학외의 지대한 관심을 받은 무제호 사건은 다행히 인사권에 대한 기자단과 교수진의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원만히 해결될 수 있었다.

 

당신의 귀, 혹은 당신의 오아시스 『연두』

77년간 4·19혁명, 5·16군사정변, 한일협정, 87년 민주항쟁 등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중심에 있던 「연세춘추」에게 시대의 변화는 새로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매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종이매체인 신문 구독자들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지난 2005년 9월 1일 첫 선을 보인 우리대학교 웹진 ‘『연두』(YONDO, YONsei Digital Oasis)’다. 당시 연세춘추 93기 사진부 출신이었던 이종찬 동인과 기자 2명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 발단이 됐다.

장수꼭지인 ‘연두이야기’와 ‘만나고 싶었습니다’를 포함해 총 7개의 꼭지로 시작한 『연두』는 현재는 배로 늘어난 13개의 꼭지를 통해 연세인과 소통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다음 블로그 뉴스에 연고전 기사가 게재어 10만 건이라는 조횟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매년 연고전과 총학생회 선거의 문자중계를 담당해왔다.

이들의 목소리를 기사라는 틀로 다시 담아내는 『연두』는 연세인의 오아시스로도 기능한다. 바로 지난 2006년 7월부터 시행된 ‘강의평가’가 그 실례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싸이월드에서 화폐로 통용되는 도토리를 지급함으로써 연세인들을 자극한 『연두』는, 현재 약 1만 건에 이르는 강의평가를 보유하고 있다.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나니

하지만 강의평가와 ‘판도라의 상자*’ 등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연재물들을 통해 영광을 구가하던 시절도 잠시, 『연두』는 수강신청 시즌이 다가오는 때에만 환대받는 ‘뒷방 늙은이’로 전락해버렸다. 이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같은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지 못하고, 연세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태생이 웹을 기반으로 한 『연두』이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처음 『연두』가 탄생될 때 겪었던 지난한 산통이 말이다.

지난 겨울, 실시간 장학금 커트라인, 신촌 인근 주거 정보 제공, 고시 게시판 신설… 강의평가에 대적할만한, 혹은 그를 뛰어넘을만한 새로운 ‘킬러 콘텐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2달 여 동안 계속 됐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템이 결정됐다.

 

무언가 다른 『연두』의 과외 서비스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 과외가 주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외를 구하는 방식은 주먹구구다. 돈을 줘가면서까지 과외를 구하려 하지만 도리어 장삿속을 챙기는 업체에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연두』는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다. 과외를 구하는 학생들을 가장 스트레스 받게 하는 수수료를 없앤 것이다. 대학 학보사 산하에 있는 웹진에서 런칭하는 서비스인 만큼 과외 교사-학생이라는 가장 주된 목적을 뛰어 넘어 멘토-멘티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도 『연두』 과외 서비스만의 장점이다.

중개 수수료 없이 오직 연세대학교 학생만이 선생님으로 소개될 수 있는 과외 서비스. 교사로든, 학생으로든 과외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기억해뒀다 이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판도라의 상자 : 2008년 ‘프시케’라는 필자가 쓴 성에 관련된 연재물로 매회 폭발적인 조횟수와 댓글을 기록한 바 있음.

글 곽기연 기자  clarieciel@yonsei.ac.kr
사진 김지영 기자 kim_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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