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배수지의 출연으로 영화「건축학개론」은 개봉하자마자  큰 관심을 받았다. 그 영화의 중심에 이용주 감독이 있었다. 지난 2009년 「불신지옥」이라는 영화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10년이라는 세월이라는 수업료를 통해,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영화 속 건물만큼이나 아름다운 누하동의 한 카페에서 「건축학개론」의 이 감독을 만나봤다.

모범생 이용주에서 영화감독 이용주가 되기까지

 모범생이었던 그는 순탄 무난하게 우리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 ‘연영회’라는 사진 동아리에 들었다. 그는 수업시간에 만난 친구들에게 ‘연영과’ 학생이 ‘건축회’에 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동아리 활동에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이 감독의 대학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했고 결국 우리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그게 인생의 성공이라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연세대라는 준거 집단에 속하고 그 안에서만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아가게 되면서 어느 순간 그렇지 않은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게 됐어요.” 덧붙여 그는 말했다. 만일 자신이 의대를 나왔거나 건축학과를 나와서 대기업 건설 회사를 들어가는 등의 준거집단이 이어지는 삶을 살았더라면, 영화를 할 엄두를 못 냈을 거라고. 그러나 그에게는 다행히도 건축 업무가 어렵고, 전근대적인 면을 갖고 있었으며, 박봉이었다. 옆에 있는 부장과 소장의 모습이 이 감독의 10년 뒤의 모습, 그리고 20년 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그는 행복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겉돌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영화계는 달랐다. “영화판에 들어오자 적금 내라는 연락이나 국민 연금 연락이 오지 않아 좋았죠.”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는 학벌도 학연도 없었다. 학교에서 오는 불합리한 차별과 부당함에 대해 분함을 느낀 적이 있던 그에게 영화계는 한결 나았다.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데도 불구하고 상사의 요구대로 해야만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그런 삶이 아닌, 자신이 판단하고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 비로소 ‘숨을 쉬며 살아가는 구나’라고 느꼈던 것이다.

 

「건축학개론」이 탄생하기까지

 그러나 당시 큰 결심을 내리고 뛰어들었던 영화계는 만만치 않았다. 사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의 초고는 이 감독이 지난 2003년도에 쓴 것이다.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걸린 10년 동안 이 감독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나리오를 들고 많은 영화사를 찾아갔었죠. 별로인 것 같다고 제작자가 거부할 때도 있었고, 제작사에서는 좋다고 했지만 배우들이 캐스팅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그땐 제가 아직 입봉*하지 않았을 때라 배우입장에서는 아마 믿음이 별로 안 갔겠죠.” 시나리오가 진부해보일 수 있는 첫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고, 시장이 점차 작아지고 있는 멜로장르이기 때문이다. 제작사들이 투자를 잘 해주지 않자,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상업성에 잘 맞는 영화를 만들어볼까, 타협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초심을 떠올리며 이겨냈다. 상업성에 타협해서 거기에 맞춰 영화를 만든다면, 자신이 살기 싫어했던 규격화된, 정량화된 삶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유혹을 극복해냈다.
 이러한 확고한 철학 때문에 무려 6년 동안 「건축학개론」을 영화로 만들고자 고군분투했던 그는 결국 입봉을 위해 잠시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다른 영화 작업을 시작했고 다행히 개봉에 성공해 무난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영화가 데뷔작인 「불신지옥」이다. “「불신지옥」으로 입봉을 하고, 지금 제작사에 들어가니 예전보다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런 상태에서 다음 영화를 고민할 때가 됐고, 자연스레 「건축학개론」을 찾게 됐어요. 주위에선 다 말렸죠(웃음). 그건 안 될 영화라고, 넌 그 시나리오에 대해서 할 만큼 다했다고.” 그러나 주위의 우려를 뿌리치고 끝까지 영화로 만들어내려 했던 진짜 이유는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이게 진짜 안 될 영화인가……. 내가 보기엔 좋은데? 내가 좋으면 대중도 좋아하지 않을까, 한번 그냥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마치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영화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영화는 저에게 서연이(영화 속 여주인공) 같은 존재에요. 첫사랑이죠.” 그의 첫 시나리오는 그에게 10년 동안 애증의 대상이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견뎌냈기 때문에 결국 그는 현재 감독으로서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과거는 이미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이었던 두 남녀가 십오 년이 흐른 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풋풋한 첫사랑은 있잖아요. 꼭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왜 그런 기억 있잖아요. 철없고 찌질했던 기억.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고 두고두고 후회하고 되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정겹고 순수했던 바로 그런 기억들이요.” 이 감독은 사람들이 옛날의 기억과 마주쳤을 때,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물음을 따라가며 얻은 답을 담은 영화가 바로 「건축학개론」이다.
 “기억은 그냥 ‘과거에 있었던 일’이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고, 떠나보내야 할 건 떠나보내는 거죠.” 이 감독에게 과거는 현재를 ‘반성’하게 만드는 매개체이기 보다는 ‘감상’하는 대상이다. 내 과거의 조각조각이 모여서 지금까지의 인생을 만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이미 ‘나’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때론 아프고, 아무 것도 모르며 삐딱하게만 바라보고, 용기가 없었던 그런 삶들이 모두가 어우러져서 자신의 삶을 이루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감독의 생각은 「건축학개론」의 결말에서 잘 나타난다. 두 주인공은 풋풋한 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채 결국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두 사람이 잘되는 해피엔딩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사실 이 두 주인공에 대한 별의별 버전이 다 나왔어요. 해피엔딩에서부터 삼각관계 버전, 뭐 심지어 여주인공이 한물 간 성인돌 가수라는 버전까지 있었다니까요. 그렇지만 전 현실적인 얘기를 그려내고 싶었어요. 두 사람이 잘되는 건 현실이 아니거든요, 그냥 판타지지.” 그렇다면 영화 후반부에 두 주인공이 키스는 왜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감독은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의 키스’라고 답했다. 두 주인공은 스무 살에 못했던 고백을 십오 년이 흐른 뒤에야 할 수 있었다. 십오 년 만의 아련한 고백을 듣고 그 순간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할지 모르겠는 그 둘의 벅찬 감정을 키스로 나타낸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만날 일이 없거든요. 절대 불륜적인 의미의 키스가 아니에요. 소중한 추억에 대한 표현이죠. 과거에 보내는 마지막 입맞춤이랄까…….”

 

 

게으른 나를 성실하게 만들어주는 일

 ‘일하는게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이 감독은 “행복하기 보단 일하면서 즐거워요. 제가 정말 게으른데 이 일은 그런 저를 성실하게 만들어 줘요”라고 답했다. 진정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분야를 찾자 기꺼이 이제껏 다져놨던 위치를 떠나보낼 수 있었던 용기. 오랜 기간 힘든 시간을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 견뎌냈던 끈기. 그리고 옛 추억에 대한 그의 관점처럼. 이 감독의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과거의 순간순간이 모여서 이뤄진 것이 아닐까.


*입봉 : 영화감독, 드라마 감독, 피디, 카메라맨 따위가 처음으로 영상물을 만듦.

글 김광연, 안규영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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