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광복관에는 953명의 법과대 학부생들이 남아 있다. 이 중 마지막 신입생은 08학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안이 타결된 지난 2007년과 로스쿨이 개원된 2009년 사이인 2008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로스쿨 도입의 가장 큰 피해자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후배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만년 새내기’로 불리고, 학교로부터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듣고 싶은 강좌는 없어서 못 듣고, 하고 싶은 공부는 자리가 없어서 못 한다. 대학생활의 낭만을 꿈꾸고 입학했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새롭게 시작된 로스쿨’ 앞에서 ‘사라져 가는 법대’의 현실이었다.

 

 

사라져 가는 법대, 줄어드는 강좌 수

법과대는 학부생들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법과대학 교과목 개설 로드맵’(로드맵)을 만들었다. 이 로드맵에 따라 오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학기별로 폐지될 과목이 미리 공지된다. △2012년 1, 2학년 과목 폐지 △2015년 3학년 과목 폐지 △2017년 4학년 과목 폐지 △20명 이상 신청 시 2학년 전공필수과목의 계절학기 개설 △폐지과목에 대한 대체교과목 개설 등이 그 내용이다.

지난 2011학년도 2학기까지는 과목 수는 유지하되 각 과목마다 나눠진 분반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강좌 수의 축소가 진행됐다. 하지만 로드맵에 따라 이번 2012년부터는 1, 2학년 과목 수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이번 학기부터 ‘민법총칙’ 등의 1학년 과목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학부생들이 반드시 수강해야 할 강좌가 폐지됐을 경우 다른 강좌로 이를 대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법과대 홈페이지에서는 폐지된 과목에 대한 대체과목을 공지하고 있다. 하지만 폐지된 모든 과목에 대해 대체과목이 있는 것은 아니다. 2012학년도 1학기에 폐지된 5개의 과목 중에서 대체과목이 있는 것은 민법총칙 뿐이다. 나머지 △헌법(1) △상법총칙 △법학개론 △물권법은 대체과목이 없거나 법과대 부학장과 개별 면담해야 하는 등 마땅한 대안 없이 폐지된 상황이다. 또한 대체과목은 본 과목을 한 번도 수강하지 않은 초수강자만 들을 수 있으며 재수강할 수 없다. 이에 박현철(법학·08)씨는 “해당 과목에 대한 학생 수요가 많고 담당 교수가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이를 폐지하고 다른 과목으로 이를 대체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융통성 없는 법과대 수강 편람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수업을 개설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는 매 계절학기 포탈 등을 통해 수강 수요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 조사가 너무 늦은 시기에 실시돼 그 다음 학기 수업 개설에 실질적인 반영이 어렵다. 실례로 지난 2010년 겨울 계절학기 수강 수요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던 수업이 당시 계절학기 강좌로 개설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이렇듯 학교 측에서 무리하게 법과대 강좌 수를 줄인 이유는 단순하다.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는 법과대에서 매 학기 졸업생들을 배출한다면 당연히 학부생 수는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어림짐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학이란 변수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학교 측의 예상과 달리 학부생 수의 감소율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학부생 수는 예상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지만 강좌 수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 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9년에서 2010년까지 재학생 수는 1천109명에서 964명으로 145명이 줄었지만 전체 강좌 수는 54개에서 40개로 14개가 줄었다. 학생 수는 13%가 감소했지만 강좌 수는 25.9%가 줄어든 것이다. 이에 법과대 학생회장 김종태(법학·08)씨는 “학생 수의 감소 추이를 매 년 파악하고 이에 맞게 강좌 수를 마련하는 등 융통성 있는 강좌 개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법과대 내에는 전임 교수 강좌의 비율이 줄어들고 강사 강좌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학부생들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2012년 2월까지 법과대 부학장을 역임했던 최진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행정법)는 “실제 전임 교수 강좌 수의 비율은 로스쿨이 도입되기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답했다. 법과대의 전체 강좌 수가 축소됨에 따라 전임 교수 강좌 비율을 종전과 동일하게 유지하더라도 교수 강좌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학부생들의 입장에서는 전임 교수 강좌의 비율이 줄어든다고 느낀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인 재수강 문제

재수강 관련 문제도 심각하다. 분반 축소와 과목 축소, 폐지된 과목에 대한 대체과목 부재 등으로 현재 법과대 학부생들이 재수강할 수 있는 과목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에 최교수는 “로스쿨 유지를 위해 법과대 과목들을 줄여나가야 하는데 재수강을 계속 허용해주는 이상 과목 폐지가 어렵다”며 “재수강을 하염없이 인정해줄 수는 없고 분명히 끝낼 시점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최교수는 “졸업 요건에 해당하는 필수 과목에 대해서는 초수강자들을 위해 개설해줬지만, 재수강자만 남은 상황에서 이들을 위해 강좌를 개설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학기 폐지된 민법 총칙은 마지막으로 개설된 지난 2011학년도 2학기 수강생 100여 명 중 3명만이 초수강자였다. 그 외의 학생들은 모두 재수강자였다. 한편 이 상황에서 최근 논의되는 대로 재수강 성적 기준이 낮아져 재수강이 어려워진다면 법과대 학부생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수강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법과대 학부생들이 겪는 특수한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교 측은 법과대 08학번 학생들이 입학할 당시만 해도 학생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법시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로스쿨의 개원과 함께 사법시험을 장려하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학교 측에서 로스쿨 진학을 추천하는 상황에서 준비하던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로스쿨 진학으로 방향을 바꾼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사법시험에는 학점이 반영되지 않는 데 반해 로스쿨 준비생에게는 학점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고시 준비로 소홀했던 수업에서 낮은 학점을 받은 학생들은 이를 재수강을 통해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강좌의 양적인 부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강좌의 질적인 부분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난다. 강좌 수 축소조치로 인해 개설된 강좌 수가 학생들의 수강수요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학교 측은 한 강좌에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형 강좌 비율을 높였다. 대형강좌는 △과다한 학생 인원 △쾌적하지 못한 강좌실 환경 △교수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의 어려움 등으로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게다가 대형강좌가 주로 진행되는 광복관 B105는 강좌실 환경 자체가 열악하다. 일부 대형 강좌는 광복관이 아닌 백양관에서 진행되기도 한다.

광복관, 누구를 위한 건물인가

강좌실 뿐만 아니라 공간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광복관은 △법과대학 △로스쿨 △법무대학원 △법과대 일반대학원이 함께 사용한다. 한 건물에서 네 집단이 강좌실과 도서관, 자치공간 등을 함께 이용하는 과정에서 공간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법과대 학생 수의 감소로 네 집단의 학생 수의 합은 2천169명에서 1천825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법과대 학부생의 공간 부족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광복관 4, 5층에 위치한 법학도서관은 로스쿨과 법과대가 공유하는 공간이었으나 2011년 3월부터 5층을 졸업반인 로스쿨 3학년 학생들을 위해 1인1좌석제로 배정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로 학부생들은 남아있는 4층을 대학원생들과 나누어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광복관 내의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들었음에도 법과대 학부생들을 위한 공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학부생 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들이 이전부터 이용해왔던 공간을 줄여야 할 당위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에 최교수는 “전국 로스쿨에서 지정좌석제를 실시하지 않는 곳은 단 두 군데 밖에 없다”며 “우리대학교도 2010년까지는 지정좌석제를 실시하지 않다가 본격적으로 변호사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로스쿨 3학년들을 위해 이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애초 학교 측은 로스쿨 개원으로 광복관이 혼잡해질 것을 우려해 지난 2010년 1월까지 제2광복관을 짓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는 곧 무산됐다. 현재 광복관 건물 옆에는 광복관 별관이 있지만 사실상 학부생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별관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학부생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 우리대학교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고려대 법과대은 공간 부족으로 인한 학부생 및 로스쿨생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학도서관인 해송도서관을 짓고 제3법학관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폐지 로드맵은 있지만, 진로 로드맵은 없어

학부생들을 위한 진로지도 프로그램도 전무하다. 법과대 학생들 대부분이 로스쿨로 진학하지만 계속해서 고시 공부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기업 법무팀에 취직하는 이들도 있다. 사법시험이 곧 폐지되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진로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법과대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진로지도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최교수는 “진로 지도 프로그램은 따로 없지만 학생들이 교수에게 요청할 경우 예외 없이 면담을 진행하면서 진로 지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학생회장 김씨는 “현재 법과대 학생들은 진로 지도에 있어 학교 측의 지원 없이 알아서 길을 찾아야 한다”며 “법대생들이 보다 다양한 꿈과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천명 법대생을 위한 고민

법과대 학생 박현철씨도 “학생들이 학교 측의 입장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어쩔 수 없이 학부생들의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스쿨 체제로의 전환은 이미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는 학부생들에게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가장 불만을 느끼는 것은 그 부담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학부생들이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는 학교 측의 무성의한 태도다.

 

박진영 기자 jypeace@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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