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 전쟁이 시작된다!

꼭두새벽부터 목욕재계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손가락 신에게 기도라도 드려야 할 것 같다. 아니다, 컴퓨터신께 빌어야 하나?…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한 학기의 운명이 결정된다. ‘올킬’할 것이냐, ‘올 킬드’당할 것이냐, 이것이 관건이다. 몇 분간의 정적을 깨고 승리자는 SNS에 시간표를 올리고, 패배자는 하이에나 마냥 새로고침만을 누른다. 원하는 과목이 ‘튕겼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과목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일 년에 두 번, 이런 피 튀기는 수강신청에 학생들은 피눈물을 흘린다. 이 수강신청의 정글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수강신청, 합리적인 수강신청은 없는 것일까? 한 학기에 꼭 한 번씩은 생각나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봤다.


원래 선착순이었을까?

그렇다. 우리대학교는 컴퓨터로 수강신청을 하기 전인 지난 1993년엔 ‘수작업’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듣고 싶은 과목의 단과대에 달려가 수강신청 과목란에 서명을 받고, 수강과목리스트가 채워지면 자신의 소속 단과대에 가서 제출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요즘엔 클릭속도가, 과거엔 달리기속도가 수강신청을 좌우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93년도 이후엔 대부분의 수강신청이 컴퓨터 신청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지난 98년부터는 수용인원이 백단위인 대형 강의에는 ‘예비수강신청’이라고 하여 추첨 제도를 도입해 선착순 제도와 병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2년간의 추첨을 통한 예비수강신청에 대해 학생들은 ‘기계가 내 수강신청을 대신할 수 없다’, 혹은 ‘내 노력으로 좌우되는 수강신청이 아니다’라고 반발했고, 추첨 방식의 수강신청은 중지됐다. 그리고 현행대로 100% 선착순제도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과목을 개설하면 해결 될 문제?

과연 선착순 제도 자체만이 문제일까. ‘누가 더 빨리 클릭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현재 수강과목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수요조사부터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대학교는 과목에 따라 수강희망 인원이 현저히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과목을 더 개설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학사지원팀 김영숙 팀장은 과목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에 따르면 실제로 교양과목이 8~9개씩 존재하지만 정작 학생들이 몰리는 과목은 1~2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1~2개의 과목에 대한 인원수를 무한정 늘리면 과목의 종류가 현저히 줄어들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수요가 몰리는 현상은 수강변경제도로 어느 정도 조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대안은 없나?

현재 많은 대학에서 우리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한다. 선착순 제도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가 많지만 이를 대신할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착순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각 학교의 시스템에 맞는 툴을 마련한 대학도 있다. △중앙대 좌석배부제-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좌석을 배부 받는 제도 △건국대 번호표 대기제-수강신청시 희망과목 신청에 실패할 경우 대기번호표를 받는 제도 △서울여대-저학년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수강신청제도가 이에 해당한다.
선착순제도 자체를 바꾼 학교도 있다. 숙명여대가 이에 해당한다. 숙명여대의 수강신청은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된다. 1단계는 졸업을 앞둔 4학년을 배려해 4-1-3-2학년 순으로 수강신청을 하는 것이다. 2단계는 전학기 학점이수 순으로 거르는 것이고 3단계는 성적순으로 걸러 탈락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에 대해 학생들의 반응은 꽤나 긍정적이다. 숙명여대 최수정(문화관광·10)씨는 “선착순이 아니다보니 치열한 수강신청 대란을 겪을 필요가 없고, 합리적인 단계를 거쳐 신청·탈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큰 불만이 없다”고 전했다. 정해진 날짜, 시간에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도 되니 방학기간에 외국에 나가있는 학생들 또한 불이익을 보는 일이 없다. 하지만 숙명여대의 수강신청제도 역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정정기간에는 탈락한 학생들이 한꺼번에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하게 되어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복수전공을 하는 학생들은 정정기간 때 또 한번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대부분 과목이 제1전공학생을 우선선발하기 때문이다.


수강신청을 경매로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해 2012학년도부터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의 이그제큐티브 MBA(주말집중) 과정에서는 경매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일단 학생들에게 가상 포인트를 지급하고 수강을 원하는 강좌에 포인트를 걸어 최고 입찰자 순으로 수강 정원을 채우는 방식이다. 수강신청 경매제는 이미 미국의 시카고, 스탠포드, 버클리, 예일, MIT, 컬럼비아, 미시간, 코넬 대학교들의 MBA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대학교도 경매제 도입이 가능할까? 대답부터 하자면 ‘불가능’ 하다. 학생 수의 차이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MBA는 일단 학생 수와 과목 수가 적기 때문에 경매제가 가능하다. 학생수는 180명 남짓, 개설된 과목도 10개 이하, 신청하는 과목의 수는 그것보다 더 적다. 따라서 과목을 입찰하더라도 시간이 중복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 어떠한 과목을 신청하든, 시간이 중복되지 않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김 팀장은 “우리대학교의 학부생은 2만 5천명 정도, 열리는 과목의 수는 2천700~2천800개이다. 10개 과목에 안전하게 분산한다고 하더라도 강의시간이 분산될 수 밖에 없다”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암시했다.


외국대학은 수강신청을 어떻게 하나

해외의 타대학 또한 학부생의 규모에 따라 수강신청 방식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등에는 ‘쇼핑위크’가 있다. 수강신청을 하기 일주일 전 과목을 미리 들어볼 수 있는 제도다. 또한 하버드대의 경우 대형강의나 유명강의는 로터리(추첨제도)를 한다. 마이클 센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 같은 경우, 1000명 남짓 수강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강신청인원이 수용 가능한 인원의 수를 넘어가면 추첨으로 바뀐다.
하지만 ‘쇼핑 위크’ 역시 우리대학교에 도입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학부생의 규모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버드대는 학년당 학부생이 약 1600명, 스탠포드대는 2000명 이하이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수요가 많다고 해서 맛보기 강의를 위해 2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을 내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타대학, 해외 타대학에서 경매제, 추첨제, 혹은 수강신청의 기준마련 등 선착순 제도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학교가 많다. 하지만 우리대학교에서 이러한 대안을 맹목적으로 도입했을 때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일차적으로 학부생규모와 강의숫자 등은 단번에 탄력적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차 수강신청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뤄져야한다. 꼭 선착순이 아니더라도 우리대학교의 실정에 맞는 대안을 강구해야하는 시기이다. 학생들이 희망하는 과목을 클릭전쟁 없이 ‘올킬’하는 그날까지.

(*스탠포드 대학교는 semester제가 아니라 quarter(여름방학을 포함해 일년을 4학기로 나누는 제도)제 라서 하버드와 달리 일주일 미만)

글 송동림 기자 eastforest@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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