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부 임미지 기자의 부기자 일기

새벽 4시에 미우관 4층으로 올라갔다. 무릎에 노트를 펴고 쭈그리고 앉았다. 오늘따라 더 산만해 보이는 편집국에서 일단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튀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도망간답시고 찾아낸 장소도 고작 바로 윗층이다. 이번주 부기자일기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서 올라왔는데, 솔직히 내가 무슨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제 수습기자가 인터뷰에서 왜 춘추에 들어왔냐고 물었다. 남들이 알만한 지극히 평범하고 틀에 박힌 대답을 해줬다. 그는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찜찜했다. 난 여길 왜 들어왔지? 스펙 때문에? 학보사 기자 경력 한줄 추가하자고 3학기라는 시간을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인맥 때문에? 물론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근데 이건 꼭 ‘춘추여서’ 얻을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기자경험 쌓아보려고? 처음엔 그랬던 것도 같은데, 춘추 지원서의 ‘나는 ○○한 기자가 되겠습니다’란은 뭐라고 적었었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원주세미나 과제였던 수습기자 일기를 뒤적여 봤다.

‘언제부터였을까, 상당히 단조로운 삶을 살아왔다. 어떤 한 가지 일에 죽어라고 열정을 쏟았던 기억이, 왠지 나에게는 없는 것 같다. 운동, 악기, 공부 등 모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되는 것 같아 초반에는 정말 열심히 하곤 했다. 그런데 조금하다보면 어느 새 흥미가 떨어져 그만두곤 했다. 매번 이런 식이다보니 스무살이 되도록 ‘내가 좋아하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은 대학생활마저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긴 정말 싫었다.’

아마 춘추를 들어온 진짜 이유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냥 거창한거 없이 내가 변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다. 또 춘추란 곳에서 내가 한 사람의 몫은 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무언가에 정신없이 몰두하는 내 모습이 보고 싶었고 거기서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그게 춘추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실 부기자가 되고 여러번 제작을 거친 지금은 “그렇다”고 답을 못 내리겠다. 얼마전 전공에 대해서도 비슷한 푸념을 한적이 있었는데, 기사를 쓰는 일이 나랑 아주 안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일에 특별한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당장 닥친 제작을 넘기면 그게 다인 것 같다.

이번주에는 마감 이틀전에 기사가 엎어지고 목요일에 새로운 아이템으로 부랴부랴 새로운 취재원을 컨택했다. 저번주 사진신청은 그냥 넋놓고있다가 수요일 밤에 신청했다. 물론 ‘무지’ 깨졌다. 정말 화가 나는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는 것, 또 나는 아무런 계획도 목적도 없이 사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번주에 저지르지 않은 실수는 다음주에 저지른다. 그럴 때마다 나란 놈은 변화를 꾀하기는커녕 나 한사람 몫의 책임도 다 못하는 것 같아 우울해졌다.

아직 내가 원하는 답을 얻어내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경험들로부터 몇 가지 힌트는 얻었다. 첫째는, 다음부터 춘추같이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이번처럼 덜컥 지원서부터 내밀지말고 좀 더 신중한 고민끝에 결정하자는 것이다. 둘째로, 어차피 시작한 일이라면 적어도 나갈 때 후회만은 하지 말자는 거다. 나는 항상 일부터 벌여놓고 그일이 나한테 잘 맞춰지기만을 바랐다. 그러고선 이것도 나랑은 안맞는 것 같다며 징징거렸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수동적인 자세로 지금까지 잘도 버텨왔구나 싶지만 이젠 이런 해명도 지겹다. 이제 그만 4층에서 내려가야 겠다.

임미지 기자 hacksuri_mj@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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