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내게 말을 걸다 #9

공교육의 권위에 대해서 말이 많고, 교권이 무너진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이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결정되는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사람 중 한 분인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씁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인 어머니께서 간혹 가지고 오시는 아이들의 편지와 소소한 에피소드를 읽고 듣고 하다보면 그래도 아직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나와 내 친구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한 두 가지쯤은 쉽게 떠오르지 않을까 한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나의 선생님을 정말 따르고 좋아했지만 아직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시다. 여러 방면에서 내가 실력발휘를 하도록 도와주신 분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 반 친구들 모두를 사랑으로 대하시는 것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께 불평하는 것이 별일 아니었던 철없는 때였지만 모두들 우리 담임선생님만큼은 꽤 존경했던 듯하다. 중학교 시절, 내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외국어고등학교를 준비하던 3학년 시기였는데 이 때 선생님께서 주신 귀여운 간식과 쪽지는 정말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쪽지와 함께 간식들을 약 봉지 모양의 종이봉투 안에 넣어 주셨는데 아마 힘든 마음을 그것으로 치유하고 힘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이미 다른 반을 맡고 계셨던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그 소중한 정성은 그 당시 정말 힘겨웠던 나를 토닥여 주는 힘이 되었다. 많은 추억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나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또 다른 선생님 한 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다. 당시 선생님을 너무도 좋아했던 나는 수첩에 선생님에 관해서 귀여운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연세가 꽤 있으셨던 분임에도 정말 생기가 넘치셨던 선생님을 보고 내가 ‘우리 선생님은 정말 활발하시다’고 쓰자 어머니께서 그런 표현 보다는 ‘활동적이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듯하다고 고쳐주셨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다른 것보다도 헤어지던 순간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께서 우리 반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을 다시 뵙기 힘들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리도록 아팠던 나는 제발 하시지 말라고 마구 졸랐다. 결국 하지 않으시겠다는 승낙을 받았지만 떠나셨던 선생님을 보고 나는 일종의 배신감도 느꼈고 선생님을 너무 따랐던 나머지 이별 때문에 마음이 정말 아팠다.

나를 포함하여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잘못된 것으로부터 보호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를 향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릴 때의 선생님의 이미지는 무엇이든 다 아시는 분, 함께한다면 무서운 것이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분이셨다.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이런 나의 선생님들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대학생이 되어서 삶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고 자꾸 내 인생이라는 항해를 맡고 있는 선장이 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두려운 얼굴로 선생님을 찾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내 내 손을 잡아 주셨던 그 많은 선생님들은 내가 홀로 설 항해에서 그분들 없이 풍랑을 헤쳐 나가는 법을 알려주시기 위해 그 때의 나와 함께해 주셨음을 떠올린다.
대학생이 되어서 비록 과외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나름 오래 누군가를 가르쳐보니 예전에 선생님들이 우리를 이끄셨던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정은 자꾸 쌓여 가는데 꼭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적절하게 엄격하기도 해야 하는 선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평등하게 아이들을 대한다는 것도 보통 노력을 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따라주는 아이들을 보다보면 이런 보람에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지치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보듬어 주셨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나의 사랑하는 학생들을 보다보면 아기를 키우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어렴풋이 짐작해 보곤 한다.

갓 어른이 되어 갈팡질팡하는 우리 세대는 이제 스스로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위치에 섰다. 어떻게,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발을 내딛으려 하다 보니 어릴 때 선생님께서 너무 많은 것을 지시하셔서 불만이었던 그 때가 그립다. 하지만 그래도 대견하게 홀로 서려는 내 자신을 보니 나를 이곳까지 걸음마 시켜주신 그 분들께 정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예전에 한 선생님께서 시험보다 모르면 머릿속에 선생님을 떠올리고 물어보라고 하셔서 다들 웃었던 적이 있는데 나는 벌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쭤볼 수 있는 분이 이렇게나 많이 마음속에 살고 계신다.

 

S. Stella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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