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 6개월 만에 고기를 먹어서…” 며칠 굶기라도 한 듯, 익지도 않은 고기를 조그만 입에 우걱우걱 밀어 넣는 그녀. “대학 4년 반 동안 추억도 없고 알바(아르바이트)한 기억밖에 없는데 남은 거라고는 학자금 대출 3천658만원이네요” 인생의 쓴맛은 벌써 다 느껴봤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

바로 MBC 시트콤,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의 등장인물, 백진희씨다. 고시원을 전전하며 취업준비를 하는 25살의 여대생인 그녀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88만원 세대의 서글픈 자화상’ 이라 불린다. 백진희는 ‘88만원 세대’로 일컬어지는 20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연기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참 청승맞고 비루하지만 그 단면에 가려진 슬픔 또한 절절하게 전달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리얼’한 배우라고 칭찬을 받는다. 백진희의 실감나는 ‘연기’ 이전에 실제 대학생들이 겪는 ‘현실’이 있다.



“저 정말 취업준비 열심히 했거든요. 정말 열심히 해서 토익도 900점 넘었구요. 컴퓨터 자격증만 3개구요. 그런데 서류 200번 떨어지고 면접은 50번 떨어졌어요”

고기는 있는 대로 먹어놓고 술에 취해 징징대는 백진희를 상상해보라. 우리는 이 대목에서 피식 웃다가도 슬그머니 웃음을 멈추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왜 우리 입가에서 웃음은 사라질까. 아마 소름끼치도록 우리 또래들과 닮은 모습을 발견해서, 백진희의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해서가 아닐까. 정말 오랜만에.

TV에서 대학생들이 사라진 지는 꽤나 오래됐다. 하숙집 대학생들의 일상을 다룬 『남자 셋 여자 셋』, 지난 2005년에 종영한 『논스톱』 시리즈 이후로 대학생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의 방영은 사실상 ‘올스톱’이 됐다. 한 시대를 풍미한 ‘청춘시트콤’이었던 『논스톱』 마저도 대학생들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많은 질타를 받았다. 한 네티즌은 『논스톱』 속 대학생들의 비현실적 생활에 대해 “그렇게 대학생활하면 장학생들도 학점 F 받고 제대로 졸업도 못할 것”이라는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논스톱에서 보이듯 대학생의 생활은 너무 눈부셔 차마 사각 렌즈로 담아내기 모자랐던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너무 암울해 사각 렌즈에 반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 질문이 너무 뻔했나?


▲ 비좁은 고시원에서 취업준비중인 백진희


옳다. 대학교에서의 낭만은 이제 빛바랜 책에만 담긴 추억이 되었다. IMF를 온 몸으로 겪은 10대는, 시간이 흘러 지금 20대가 되었고 경제위기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겪는 ‘88만원 세대’가 됐다.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요즘 대학생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학점도 따야하고, 스펙도 쌓아야 하며,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도 벌어야 한다. 학벌이 좋아도 뚫기 힘들다는 취업난. 대학교에 입학하기만 기다렸던 새내기의 설렌 마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졸업이 두려운 학생들이 태반이다. 이런 현실속의 대학생이 대중들에게 훈훈하게 어필하는 캐릭터로 태어날 수 있을까. 오늘날 대학생들의 암울한 현실이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졌을 때, 시청자는 얼마나 우울해할까. TV속에서도 대학생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충열(신소재ㆍ07)씨는 “세상이 너무 경쟁적으로 돌아가다 보니, 관심분야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들이 밟는 길을 따라가야 할 것 같다”며 “논스톱같은 대학생활은 다 판타지였다”고 말했다. “용돈에 치이고, 학점에 치이고, 과제에 치이고….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이게 텔레비전에 나와 봤자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못박는 이씨의 말이 서글프다.

하이킥3의 백진희가 보여주는, ‘취업 스트레스에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대학생들의 고달픈 하루하루’는 바로 현실이다. ‘취업만이 살 길이다’라고 크게 써 붙여 놓은 그의 고시원 쪽방이 어디 시트콤 속에서만 존재하겠는가. 이렇게 사회에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대학생들이 TV 속에서마저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리얼리티’가 아닐까.

 

송동림 기자  eastforest@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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