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내게 말을 걸다 #5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보면 폰더 씨가 마지막 부분에서 대천사 미카엘을 만나 ‘존재할 수 있었던 것들의 방’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방에는 신기하고도 유용한 발명품도 있고 세상에 존재했더라면 수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었을 많은 것들이 즐비했다. 궁금해 하는 폰더 씨에게 미카엘은 사람들이 한 번만 더 시도했더라면, 도전했더라면 얻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이 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아마 이 방안에 쌓여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는 우리가 일조한 부분도 꽤 되지 않을까 싶다. 도전의 문턱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뒤늦게야 후회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한 사람의 일원으로서 아직은 실패가 두렵지 않아 ‘도전’할 줄 알았던 나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곤 한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우선은 하고 보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용감한 어린이였다. 7살 때의 화창한 어느 날, 우리 모두는 유치원 운동장에 모여 유치원 원장님의 훈화 말씀도 듣고 재잘재잘 하다가 손톱 검사도 하곤 했다. 그 날도 그렇게 옹기종기 줄에 서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있었는데 원장님께서 기다란 종이를 하나 펼치시더니 친구들 앞에서 이것을 소리 내어 읽어볼 사람 없냐고 물으셨다. 6살에 한글 공부를 처음 했던 나는 그 당시 완성 단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꼭 읽어보고 싶은데 모르는 글자가 있을까봐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기회를 놓칠까봐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은 눈을 꼭 감고 손을 번쩍 들었다. 목소리도 또랑또랑, 하지만 혹시나 못 읽는 글자가 있을까 조심조심 읽어 갈 무렵 아뿔싸, ‘삶’이라는 글자가 등장했다. 7년차 인생에 처음 보는 가장 어려운 글자였다. 당황했지만 대충 짐작해서 ‘삼’이라고 읽고 지나갔다. 그 뒤에 나간 친구가 ‘삶’이라는 발음을 하는 것을 듣고 잠시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내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도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그렇게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을 비교한다면 현재의 내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를 따르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꼭 해보고 싶었던 것도 혹시 잘하지 못할까봐, 다른 사람이 나를 두고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서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서야 후회하는 것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던 어린 시절은 지나가고 커 갈수록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발을 들이면서 사람들은 실패의 경험을 하나 둘 얻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머릿속에 남아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오를 수 있는 정상에도, 단 한 번만 더 시도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실험에서도 망설이다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후회가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도 이제는 약간의 ‘하고 보자’ 정신을 지향하게 되었다. 또 이것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아닌가 한다. 해보지도 않은 것의 결과를 정확하게 점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우선 도전해 보아야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쥘 수 있게 된다. 나는 최소한 실패하더라도 ‘그 때 한 번 해볼걸.’하는 후회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닌가 한다. 도전을 했는데,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어찌 할 수 없지만 해 볼 수 있었는데, 했으면 정말 원하는 것을 얻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기회를 떠나보내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 내 목숨도, 위험도 아닌 단지 나의 ‘두려움’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많은 이들이 망설임 속에서 무난하게 포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존재할 수 있었던 것들의 방’에 또 하나의 안타까움만 쌓여갈 뿐이다. 도전했다가 정말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고,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쓸데없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할 줄 아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그 부끄러움 앞에 서게 되리라 믿는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올 수 있다. 다만 모두가 아는 그런 이들은 그 때 눈을 질끈 감고 발걸음을 내딛은 사람들이다. 그들 중 실패가 없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단순한 두려움에 자신이 놓쳤던 수많은 기회와 망설임이 떠오른다면 이 순간부터 ‘도전’하자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혹시 그랬더라면’하는 무수한 아쉬움에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S. Stella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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