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 무슨 ‘남의 유적지’가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남해안에는 ‘남의 유적지’가 몇 개 있다. 바로 왜성(倭城)이다. 왜성은 글자 그대로 일본군이 우리 땅에 쌓은 일본식 성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은 우리 땅에 상륙한 직후부터 남해안 지대에 성을 쌓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목적은 전쟁이 장기화될 것을 대비해 조선군의 공격을 방어하며 바다 쪽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왜성은 남해안 일대에 수십 개 정도 세워졌는데, 현재 남아있는 왜성은 대부분 경상도 지방에 남아있다. 이번에 소개할 순천 왜성은 전라도 지방에 남아있는 유일한 왜성이다. 순천왜성은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경 세워진 성으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1만4천 여 명의 왜군 최정예 부대가 조명 연합군과 대규모 격전을 치른 곳이라고 한다.  

 

▲순천왜성의 성벽

 

▲우리나라 전라병영성의 성벽

 

왜성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인들이 건축한 성인 만큼, 우리나라의 성과는 축조방식이나 구조가 사뭇 다르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차이점은 돌을 쌓은 방식이다. 다듬지 않은 돌을 짜맞추어 쌓아올린, 이른바 ‘허튼쌓기’를 한 것은 우리나라의 성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랫부분은 큰 돌을 쌓고 위로 갈수록 점점 작은 돌을 사용한 우리나라 성과 달리 왜성은 크기에 관계 없이 커다란 돌을 위아래 구분없이 쌓고, 그 사이사이 틈새에 작은 돌을 끼워넣은 방식으로 성을 쌓았다. 가끔은 큰 돌이 작은 돌 위에 올라가 있어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순천왜성. 아래 전라병영성과 성벽의 단면형태를 비교해보자.

 

▲전라병영성

 

성벽의 너비 역시 우리나라 성과 차이가 많다. 물론 우리나라 성이나 일본 성이나 성벽의 아래가 좀 두껍고 위쪽이 얇은 것은 같다. 성벽이 안전하게 서 있게 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처사이다. 그런데 왜성을 보면 우리나라보다 아래위의 너비 차가 무척 심하다. 성벽의 경사가 거의 60도 정도여서, 성벽의 단면이 사다리꼴에 가까울 정도이다. 

 

 

 

▲순천왜성의 사진. 성벽이 여러 면으로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순천왜성 성벽 사이의 해자

 

▲일본 오사카성의 지도. 오사카 성 역시 해자와 여러 겹의 성곽으로 구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곽의 구조에서도 우리나라 성곽과의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나라의 성은 성벽 한 겹을 빙 둘러 치고, 거기에 문루를 보호하는 옹성 등이 있는 게 전부인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왜성은 먼저 안쪽에 본성(本城)이 있고, 그 바깥을 다시 성벽으로 둘러싼 후 그 사이에 해자(垓子)를 두는 등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성보다 훨씬 공략이 어려운 것이다. 아마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숱한 전투를 거쳤기 때문에 이런 구조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순천왜성의 천수대

 

▲우리가 '오사카 성'하면 떠올리는 이 사진은 오사카 성의 천수각이다.

 일본 성에서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천수각(天守閣)이다. 천수각은 일본식 성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오사카 성(大阪城)’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 어마어마한 전각이 바로 천수각이다. 이 천수각은 성의 중앙에 서 있는 높다란 건축물로, 돌로 높다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누각형식의 건축물을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곳은 성주가 기거하는 곳이자 적의 동향을 감시하는 망루, 성안의 군사 배치 등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휘본부의 역할까지 하는 다목적 시설이다. 순천 왜성에도 이 천수각이 서있던 ‘천수대(天守臺)’가 있다. 이 높은 기단 위에 누각을 세웠을 것이다.



왜성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유적지는 아니다. 오히려 임진왜란의 상처를 드러내는 ‘상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 있는 왜성들의 취급은 안습 그 자체이다. 순천왜성도 원래 ‘사적’이었다가 ‘도 기념물’로 격하되었고, 다른 왜성들도 기념물 정도의 취급밖에 받고 있지 못하다. 물론 이런 취급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임진왜란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우군 yond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