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나 노인은 대답이 없었다. 분명 이방은 시끄럽던 방이었다. 현민은 한발 물러서 다시 한 번 문을 확인 하였고, 아까 보았던 노인의 방 앞 풍경화까지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현민은 얼른 주변을 둘러보며 보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현민은 얼른 노인의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노인의 방 안은 자신이 있던 방과 정확히 일치 하는 황토색의 정육면체 상자 안이었다. 노인은 힘이 풀린 눈동자로 겨우 현민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노인의 팔에는 기다란 주사 바늘이 끼워져 있었다. 주사바늘 끝에는 진정제라고 쓰여 있는 팩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친환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노인의 옆으로 가 있었다. 노인은 힘이 없는 눈동자를 굴리며 방의 구석으로 눈을 가져갔다. 방의 구석에는 노인의 짐이 있었다. 많은 종이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노인이 현민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눈동자는 다시 현민에게로 움직였다. 현민은 의아해 하였다.
“저 종이들… 가져다 드릴까요?”
그러나 노인은 말없이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다.
“뭐… 잠깐 진정제를 빼는 건 괜찮겠지. 뺐다고 바로 정신이 들겠어? 말만 할 수 있을 정도만 있다가 다시 꽂으면 되지.”
현민은 진정제 팩과 연결호스사이의 연결부위를 빼버렸다. 그러자 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현민의 옷깃을 잡아챘다.
“나가야돼! 나가야된다고! 넌 지금 몰라! 뭔지! 제발-.”
현민은 당황한 얼굴로 붉어진 얼굴로 빨리 진정제와 호스를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손을 종이 무더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져가 주게 난 더 이상 안 돼, 무섭단 말이야.”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민이 있던 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네! 조현민 환자분 지금 가신다구-.”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 벌써 가셨나? 짐은 여기에 있는데?”
현민은 심장이 빠른 속도로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진정제와 호스를 연결하였지만 노인은 계속해서 현민의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여자의 발걸음 소리와 보조원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현민의 심장소리는 터질듯이 들려왔다. 노인은 드디어 약기운이 도는지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노인의 눈동자는 여전히 종이무더기와 현민을 번갈아 보면서 입술을 들썩거렸다.
“여기서 뭐하시나요?”
아까 그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네 저… 그게… 저랑 부딪히신 분이 어느 분이신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네… 뭐 별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저 들어오면 안 되는 건가요?”
“아, 네 뭐 여기 있는 물건만 건들이지 않으시면 괜찮으세요. 저기 있는 짐은 할아버님의 짐이라서 가져가시면 안 되시고요.”
현민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까처럼 노인의 몸은 힘이 빠져 있었다. 현민은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할아버님이 별 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아서 괜찮으신 것 같네요”
노인도 포기를 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럼 저희가 공항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아 괜찮습니다. 저 혼자 가죠. 길만 가르쳐 주세요. 어차피 여행 많이 하지도 못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죠.”
“네 그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여자는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럼 저는 제 짐 챙기러 가보겠습니다.”
현민은 노인에게 잡혔던 팔목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고 보조원 사이로 여자를 지나쳐 복도로 나왔다. 여자는 남자를 따라 나왔고 아까 세탁실로 안내해주었던 보조원에게 공항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리라고 하였다. 현민은 자신이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아… 저 혼자 짐을 챙길 수 있습니다.”
하고는 보조원이 들어오기 전에 문을 닫아 버렸다. 닫힐 때 나는 기이한 소리는 현민에게 자극적으로 들렸다. 현민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고는 아까 세탁했던 옷으로 갈아입고 짐을 챙겨 방을 빠져 나왔다.
“그 옷은 지금 추울 겁니다. 긴 옷 없으십니까?”
보조원이 현민에게 말을 하였다. 13일이 지난 지금이 신포니에테에는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의식 없이 있었던 현민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현민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보조원이 먼저 움직였다. 현민은 보조원을 따라갔다. 아까 보지 못했던 이상하게 생긴 풍경화를 보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도 없는 이상한 풍경화였다. 현민은 고개를 돌려 여자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보조원을 따라 센터를 나왔다. 날씨는 예상 보다 더 추웠고 가방 안에서 겉옷을 꺼내어 입었다. 보조원은 현민에게 공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현민이 옷을 입으며 듣는 동안 보조원은 설명을 마치고 안녕히 가라는 말과 함께 등을 돌려 센터 안으로 사라졌다. 현민은 가방을 들고는 보조원이 말해준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현민이 나왔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현민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자신이 14일 동안 묵을 수 있게 예약을 해 놓은 호텔로 갔다. 호텔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그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자신의 핏자국으로 예상되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기가 내가 부딪힌 곳인가 보네… 아… 호텔에 거의 다 와서 이게 뭐람…”
현민은 퉁명스럽게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현민은 로비중앙에 서서 주변을 슥 훑어보았다. 신포니에테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이었다. 주변은 금색난간이 있었고 로비의 위쪽으로는 뻥 뚫려 노을 진 하늘이 다 보였다. 국업개혁 이전의 느낌을 되살려 고전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세련된 느낌을 실어 주었다. 게다가 붉은빛 노을이 샹들리에를 비추어 더욱 화려하게 보였다. 현민은 크게 숨을 내쉬며 키를 받으러 갔다.
“아저씨!”
멀리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였다. 로비 안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였다. 현민은 무의식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어느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현민은 당황한 듯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호텔 직원을 제외하면 분명 저 남자가 부르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현민은 당황했다. 신포니에테에는 분명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더더군다나 친구의 친구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아저씨! 몸은 좀 괜찮아요?”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묻는 첫 마디가 이것이었다. 하지만 현민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저 사고난거 보셨어요?”
“그럼요! 아저씨 아니면 제가 다쳤을 걸요? 바로 옆에 있었어요. 저 바로 저기서 가게 하거든요.”
현민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눈동자를 올렸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하하 제가 아저씨 살린 거예요. 저기 묵으실 때 없으신가요? 보니깐 여행 오신 것 같던데?”
“아니요, 저 이 호텔에서 묵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어요.”
청년은 현민을 지나쳐 호텔 문 쪽으로 나가버렸다. 청년은 추운 듯 두 손으로 양팔을 감싸 쥐더니 고개를 숙이고 바람을 막으며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다.
“저기 손님… 예약하셨나요?”
호텔직원이 어느새 뒤로 다가와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혹시 조현민 고객님 맞으신가요?”
호텔직원이 고객 명단을 살펴보며 말을 하였다.
“네… 지금 잘 수 있는 거죠?”
“네, 그렇지만 마지막 날이라서 내일 오후 3시까지는 방을 빼 주셔야 합니다. 혹시 지금 안주무시면 50% 환불이 가능하지만 하루라도 주무실 경우에는 30%만 환불이 가능합니다.”
호텔직원은 키를 건네면서 말을 하였다.

조현민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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