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홍재민 기자의 부기자 일기

‘좋은 친구들’

「연세춘추」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아 혹시나 헷갈릴 수 있으니 짚고 넘어가자 「연세춘추」가 좋은 친구라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오래가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친구들이라고. 일리 있는 말이다. 함께 교실에서 3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오랫동안 공부했기 때문에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교에 와서야 이 세상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도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요일마다 거의 밤을 샌다. 수습기자 시절 나는 애드바룬을 생각하며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밤을 샜다. 어떤 날에는 금요일을 꼴딱 새고 토요일에 바로 시험을 친 적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함께 지내면서 점점 친구들의 매력에 점점 끌리게 됐다.

물론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지금 생각한 바와는 달랐다. ‘물리학과에서 여기 왜 오지?’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쟤는 인상이 참 시크하네’, ‘와, 군대 갔다 온 형도 있구나’ 따위로 다양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누나가 적극 추천해서 신문사 들어왔더니 이거 완전 낚신데’라는 생각이 들어 앨리스를 이끈 고양이 같은 누나를 추궁하기도 했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성격도 소심한 나는 기분이 참 묘했다.
화가 났던 점도 없진 않았다. 수습기자는 웹진 「연두」의 ‘만나고 싶었습니다’라는 코너에 기사를 쓴다. 이 코너는 수습기자 두세명 정도가 한 팀을 이뤄 유명인사와 인터뷰하는 코너이다. 그 때 짝을 이뤘던 친구들이 인터뷰에 불참하게 돼 혼자 그날 수업을 다 빠졌다.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까지 가서는 그 분이 낮잠을 자시는 바람에 1시간 정도 늦게 겨우 만나 굉장히 고생했다. 인터뷰 약속도 내가 잡고 질문지도 거의 혼자 작성했다. 글을 내가 쓰진 않았지만 상당히 손해본 느낌이 들었다. 금방 아쉬운 점이 없어지긴 했지만 화가 났던 여러 일 중에 하나로 남았다.

지금까지 나는 사실 굉장히 외로웠다.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처가 곪아터져 온몸에 퍼졌는데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것도 투정부리는 것 같아 나 혼자 꾹 참고 견뎠다. 누구 하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그런 내 마음을 녹여줬다. 부기자가 되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굳어졌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이들은 내가 힘들 때면 옆에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준다. 내가 불렀을 때 달려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이해해준다. 값싼 동정이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우정을 느낄 수가 있다.
앞으로 많은 길이 남아 어디로 갈지 모르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추억이다. 이것들을 되새겨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생기고 있다는 점도 특별하게 여겨진다. 같이 일하면서 생기는 사건, 사고들 그리고 함께했던 여행에서의 시간들이 우리의 발자취가 됐다.
나는 「연세춘추」가 힘들었다. 전혀 쉽지 않았다. 매주 수학, 물리, 화학 레포트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르면서 기자생활까지 병행하는 상황이라 잠을 거의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게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홍재민 기자  monmong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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