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사회지기학교


풀뿌리 민주주의는 기존의 중앙집권적이고 엘리트 위주의 정치 행위를 지양하고, 지역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권력의 획득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 『위키백과』

‘좋은 대학에서 좋은 학점을 받아 좋은 직장을 가지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대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대학에서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불문율이다. 하지만 우리대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이 불문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있다. 우리대학교 동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풀뿌리사회지기학교’(아래 사회지기학교)가 바로 그 곳이다. 학생과 교수가 아닌, 가르칠 이와 배울 이가 함께 공부하는 그 곳. 대안대학 사회지기학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배움이란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

“오늘날 대학은 더 이상 진지하게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에요.” 사회지기학교 황정화 교무지기는 대학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배우는 사람은 배움을 ‘이득을 얻기 위한’ 도구적인 목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사람은 문자화된 지식만을 나열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사회지기학교에서 지향하는 배움은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사회의 틀에 맞춰 도구적으로 행하는 배움은 사회지기학교에서 지향하는 배움과 거리가 멀다.
사회지기학교는 이런 문제제기와 함께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는 황 교무지기의 말은 사회지기학교의 취지와 같은 맥락이다. 사회의 ‘큰 힘’이 아니라, 작은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생각,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젊은이들의 잠재력과 개성 그리고 지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지기학교는 문을 열었다.

 

배울 이와 가르칠 이가 함께하는 학교

사회지기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수 대신 ‘배울 이’와 ‘가르칠 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배울 이의 ‘주체적인 배움’과 가르칠 이의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녹아 있는 표현이다. 사회지기학교는 배울 이와 가르칠 이가 함께만들어가는 △길찾기 △터닦기 △사회지기의 과정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길찾기 과정은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다.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터닦기 과정은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는 시간’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기획을 하기 전에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단계다. 사회지기 과정은 다른 과정들보다 ‘현장’과 ‘실천’이라는 단어가 중시된다. 배울 이들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행하거나 연구 과제를 실행하기도 한다.

생각을 키우는 시간

사회지기학교의 터닦기 과정에는 ‘글쓰기’과정이 있다. 우리대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수강해야 하는 ‘공통기초’과목인 ‘글쓰기’와 같은 과목이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은 판이하다. ‘학술적인 글을 쓰는 법’을 훈련하기 위해 『대학 글쓰기』의 70%이상을 다룰 것을 요구하는 우리대학교와 달리 사회지기학교의 글쓰기 시간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을 갖추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르포작가로 유명한 김순천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던지는 행위’라는 모토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글쓰기를 배운다. 김 작가가 르포 작가이기 때문인지 글을 쓸 때 ‘현장에 직접 가는 것’을 중시한다고 한다. 이번 학기 글쓰기 수업의 수강생은 3명이다. 적은 수의 배울 이가 수업을 받기 때문에 가르칠 이가 배울 이 각각의 특징을 짚어낼 수 있다.
이처럼 사회지기학교의 수업들은 배울 이와 가르칠 이가 소수 대 소수로 만나는 시간이다. 지역 교회 목사가 진행하는 ‘종교와 사회’ 시간엔 2명의 수강생이 열띤 토론을 펼친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배울 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수업을 지향하기 때문에 매 학기 다른 수업이 개설된다.

학교를 찾는 학생은 적어

사회지기학교가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학생들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황 교무지기는 “최근 3달 동안 10곳이 넘는 언론사에서 취재요청을 받았다”며 사회지기학교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취재요청을 했던 언론사 가운데는 대학언론사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배울 이를 모집할 때면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고 황 교무지기는 말한다. 학교에 대한 관심이 수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대학을 다니면서도 사회지기학교를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황 교무처장은 “사회지기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은 한 학기에 10개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 이번 학기에는 4개의 수업이 개설됐다”면서 “학교에서도 많은 과목을 수강하는 것보다는 적은 과목을 깊게 듣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기존의 대학과 함께 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졸업생은 없어

그렇다면 사회지기학교의 졸업생들은 실제로 어떤 사회적인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뜻밖에도 10기 이상의 입학생들이 존재하지만, 졸업생은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황 교무지기는 “사회지기학교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졸업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길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졸업생들을 배출하고픈 욕심이 있다. 학교가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배울 이들의 인생 전반에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황 교무지기는 “올해 안에 졸업생이 한 명 배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지기학교에서 공부하고 카페 체화당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원영(26)씨가 졸업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학이라는 곳에 큰 기대를 품지 않은 사람, 자신의 꿈이 확고하며 공부하고 싶은 바가 뚜렷한 사람,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사회에서 창조적이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사회지기학교가 답이다. “젊은이들이 체화돼버린 진학을 과감히 멈추고, 자신의 삶에 변화를 찾기를 바란다”고 황 교무지기는 말했다. 대안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회지기학교에서 지향하는 공동체, 현장, 실천이라는 가치는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박정현 기자 jete@yonsei.ac.kr
자료사진 풀뿌리사회지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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