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봉사활동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이제 곧 아현역에 다다르던 상황. 사람이 꽤 많아서 서로 끼고 좀 거슬리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안내방송을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게 평소 메트로를 광고하던 안내방송과는 달리, 목소리가 엄청 크고 날카로워서 굉장히 신경 쓰였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잡상인이 파는 물건을 절대 사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법영업행위입니다. 지하철에서 물건 파시는 분!! 지금 당장 내려주세요. 정차합니다. 민원 들어왔어요. 다음 역에서 내리세요. 확인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불법 상행위에요. 승객분들 절대 사지마세요."

얼마나 목소리가 다급해보이고 칼날 같았는지, 나까지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목소리는 얼마나 크던지. 열차가 정차했고, 그때 지하철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잡상인이 내렸는지 내리지 않았는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내렸을까?

잠시 후에 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까보다 한 층 더 날카롭고 크~게.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확인합니다. 빨리 내리세요. 불법 상행위입니다. 홍대입구역까지 안 내리면 정차합니다. 빨리 내리세요."
'아직 안 내렸구나.. 그 잡상인 지금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열차는 결국 홍대입구역에서 정차하지 않았다. 이를 보아 이대역이나 신촌역에서 잡상인은 내린 것 같다. 더 이상 일이 크게 벌려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부디 아무 일 없었길.

마치 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혼내는 느낌의 안내방송을 계속 들으면서
'아니.. 이 아저씨가 그렇게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열심히 물건을 팔다가 갑자기 지하철 전체에 울려 펴지는 자신을 향한 총탄 같은 안내방송, 더 이상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들, 자신을 향한 동정의 시선, 무안함, 신세 한탄.
질서, 규칙이라는 이름의 매정함.
좋다. 세금을 내지 않고 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것이 잡상인들의 잘못이라면, 여기서 하나 더.

1000원짜리 하나 팔려고 갖은 애를 쓰면서 쫓겨나며 근근히 살아가는 잡상인.
탈세를 위해 고수익을 조작하는 기업인.
세금을 내지 않고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고위 계층들.
이들 중 가장 잘못한 사람은 누구일까?
뭐가 더 편한 걸까?

집에서 2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얼마 전에 스마트폰으로 버스 관련 어플을 다운받은 이후로 항상 나가기 전에 버스의 현재 위치와 도착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한 뒤 시간을 맞춰 나간다. 3~4분 전에 나가는 게 가장 안전하면서 여유 있게 버스를 탈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어플이 가끔 오류가 나는 건지 틀릴 때가 있다. 분명 더 여유를 두고 나갔는데 버스가 지나갈 때의 심정.. 그때의 억울함과 분통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진짜 짜증나서 옆에 있는 가로수를 뽑아 분질러버리고 싶다.

어느 날 나가기 전 어김없이 버스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봤는데 꺼져있었다. 아까 알람 때문에 껐나보다. 키는데 2분은 족히 넘게 걸릴 듯 해서 그냥 나갔다.
웬걸. 버스가 눈 앞에서 지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마트 폰으로 올 시간을 확인하고 난 뒤에 놓친 상황과는 완전히 달랐다. 올 것을 예상했을 때 버스를 놓친 것과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버스를 놓친 것.

스마트폰이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 없는 편안함까지 억지로 떠안겼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는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우리는 전에 기대하지 않았던 편안함을 접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상승해버린 우리의 기대치 때문에 굳이 필요 없었던 실망도 함께 생기게 된 것이다. 기술의 편안함으로 인해 얻게 되는 마음의 불편함. 과연 어떤 것이 진짜 불편한 걸까.

이번 주가 다 지나도록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 두 가지.

조소현 yond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