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연애하는 사나이, ‘김승일 시인’을 만나다

“날 한번만 봐다오. 내가 더 잘할게. 날 한번만 안아다오. 내가 더 품어줄게.”
10년 동안 한번도 변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는 애인이 있을까. 비록 ‘밀당’이 심한 그녀지만, 항상 고무줄처럼 내게 다시 돌아와주는 사랑스런 그녀. 그만이 간직해 온 소중한 그녀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조심스레 풀어본다. 시와 연애하는 낭만적인 시인, 김승일씨를 만나봤다. 


Q. 언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나요?
A. 저는 안양외고 문예창작과를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부터 시를 쓰려고 생각하고 입학한거죠. 중학생 때 TV를 보고 있는데 분교 교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시인이더군요. 순간 너무 행복해 보이는거에요, 노래하고 시쓰고 아이들에게 국어도 가르치고. 신선놀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시인만 되면 분교 교사를 시켜주는 줄 알았거든요. (웃음) 어찌됐든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Q. 시 한편을 쓸 때 걸리는 시간은 어느정도 인가요?
A. 저는 시 한 편을 쓸 때 70시간이 걸려요.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씁니다. 목에 담이 온 적도 있죠. 제가 이렇게 노력하면 시가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오기이고 집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시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발목을 붙잡고 있더군요. 그 때 전 70시간을 앉아서 울부짖었습니다. “시야, 사랑한다. 제발 나 좀 한번만 도와주라. 이 단계만 넘어갈 수 있게 해다오. 내가 너를 위해 시를 쓰는거야.” 슬럼프고 한계였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귀어달라 빈다고 사귀어주는건 아니더라고요. 스스로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거죠. 그래서 전 시에게 저 자신을 어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시야, 오늘 재밌는 일화가 있어. 솔잎이 연두색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죽을 때가 온 거래.” 이런 식으로 시에게 대화를 걸었고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Q. ‘시가 밥먹여주냐’ 라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문학은 알아주는 장르가 아니에요. 특히 시는 더욱더 그러하죠. 저는 스스로 열패감을 줄이기 위해 더 잘난 척을 하기도 했죠. “난 뭐, 나니까!” 이런 자세 말이에요. 제가 뱉은 말엔 책임을 져야 하니까 마치 배수의 진을 친 것처럼 저는 더 노력했습니다. 시를 알아주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 저도 알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뭔지 아세요? 시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겁니다. 이 애정 있는 독자는 서로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거든요. 누가 ‘시가 밥먹여주냐’고 물으면 전 ‘시 밥먹여줘요’ 라고 답할 거에요. 비경제성을 비난하는데 경제성만 따지는 사회가 잘못된거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잘못된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시가 밥먹여주는거 맞아요. 좋은 시를 쓰면 교육의 측면에서 항상 기회가 있거든요.

Q.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시는… 제 애인입니다. (목소리가 떨려왔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것이고, 제 딸이고, 제 애인이고, 제 자신입니다, 시는. 10년 넘게 단 한번도 시에게 기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한번 떠났다가도 제가 다시 시에게 부탁하고, 고백하고, 기대면 시는 다시 웃어줍니다. 전 시가 없다면 아마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Q. 만약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A. 그럼 당연히 만날 수가 없습니다. 시를 싫어한다면 그 순간 공감대 형성이 안 되는 거에요. 시가 제 딸인데 제 자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전 절대 만날 수가 없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적으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Q. 끝으로 문학의 길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20대 대학생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A. 욕심을 버리세요.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욕심이 많아서 거든요. 사람에 따라선 저를 보고 ‘87년생인데 벌써 등단했다’며 자신은 이미 85년생이니 저처럼 되기는 틀렸다고들 말해요. 어떤 사람처럼 되겠다는 자세. 이 자세를 버렸으면 해요. 가장 자신 있는 부분,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해야지 남들에게 스티브 잡스처럼 보이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것은 말짱 도루묵입니다.


 

  글 김유빈 기자 eubi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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