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속 영화관 #9


5월,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밥 딜런의 일대기를 다룬 『아임 낫 데어』입니다.
밥 딜런은 1941년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로버트 알렌 짐머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60년대 초반 포크가수로 데뷔하여 비틀스와 함께 6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지배했으며,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1963년에 발표된 『The Freewheelin’ Bob Dylan』은 진정한 포크음악의 서막을 연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1965년에 발표한 『Bringing It All Back Home』은 포크에 일렉기타를 도입하여 포크락을 창시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뒤이어 발표한 『Highway 61 Revisited』는 앞서 선보인 포크락을 완성시킨 그의 마스터피스로도 유명하지요. 더욱이 『Blowin’ In The Wind』의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나, 「Knockin’ On Heaven’s Door」 그리고 <Like A Rolling Stone>와 같은 곡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60장에 달하는 그의 음반들은 음악뿐만이 아니라 시적인 가사들로 인해 그가 매해 노벨 문학상의 유력후보로 거론된다는 소문의 진실여부를 궁금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밥 딜런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모자란, 어쩌면 잘못된 설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지요. 사실 비틀스의 음악과는 달리 그의 음악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데다가 솔직히 말해 듣기 좋다고 하기도 어려우니까요. 허스키하다 못해 쉰 목소리로 시종일관 속삭이는 통에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흥미를 잃게 된다, 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인걸요. 오죽하면 다이어 스트레이트의 마크 노플러는 밥 딜런 덕분에 노래를 잘 못하는 자신도 노래를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지요. (그렇다고 이 둘 사이가 나쁘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니 괜한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뭐, 1983년 발표된 밥 딜런의 음반 <Infidel>에서 마크 노플러의 기타연주를 듣는 다면 그런 생각은 금방 가시겠지만요.) 포크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들어도 듣는 게 아니라고는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걸어둔 채 이런 저런 은유를 남발해대는 통에 과연 이해를 바라는 것인지 조차 헷갈릴 정도이니 이래서야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는 칭호는 그저 비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전기물에 갖는 불만도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전기 영화라고 하면 실존 인물의 삶에서 드라마를 찾아내 그것을 영화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때문에 인과관계가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납득이 쉬워 드라마는 강력해지지만, 반대로 그것이 그 인물의 전부라고 말하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통일성과 완결성을 모두 갖춘 인물의 삶을 잘 만들어내기 위해서라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일관되기는커녕 모순적인 이런저런 얼굴들을 열심히 가지 쳐내고서야 아무 누구의 삶도 아니게 되어버릴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아임 낫 데어>는 이러한 전기 영화의 모순에 (결코 친절하지는 않지만) 전에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맞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밥 딜런 없는 밥 딜런의 전기 영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는 135분의 다소 긴 러닝타임 동안 밥 딜런의 음악만을 내러티브 삼아 그의 균열된 자아들을 교묘하게 얽어놓습니다. 포크가수/시인/영화배우/아웃사이더/가짜/로큰롤가수/가스펠가수 등 각각의 균열된 자아들은 인종, 나이, 성은 물론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독립된 인물들로 나타나는데, 이마저도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이미지를 나열하는데 그칠 뿐 ‘밥 딜런은 네모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는 이렇다 할 답이 되지 않습니다.


관객은 영화가 끝날 즈음에야 어렴풋이나마 애초에 답 내놓을 생각이 없는 영화였다는 것을 눈치 채고, 제목부터 맘에 안 들었다는 둥, 속았다는 둥 불평을 늘어놓겠지요. 하덕규의 「가시나무」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고 시작해서는 김국환의 「타타타」마냥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하는 터무니없고 무책임한 결론을 내놓는 것이 꽤나 괘씸하지만, 영화 내내 끊임없이 흐르는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아주 아무것도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아무렴 어떤가요?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준다니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게다가 유일하게 밥 딜런 본인에게 감독이 허락도 받은 영화라던데, 쓸데없이 열 내지 말고 그냥 넘어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정기상영작 『아임 낫 데어』는 24(화), 26(목) 오후 6시 10분, 학술정보관 2층 멀티미디어센터 미디어감상실에서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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