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요리 국가대표, 셰프 에드워드 권을 만나다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바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준다는 뜻의 서양 속담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 역시 그의 저서에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것입니다(Tell me what you eat and I will tell you what you are)”라며 우리가 먹는 음식의 가치와 그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요리사의 아이디어와 정성이 들어간 음식 한 접시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한 끼의 식사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 탓에 요리사들은 늘 더 좋은 음식,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두바이의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의 수석총괄주방장(Hotel head chef)으로 일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셰프 ‘에드워드 권(본명 권영민, 40)’은, 적어도 이 분야에서 한국 국가대표다.

 
“요리사라는 직업의 편견을 깨고 싶다”


한국에서 요리사라는 직업은 여전히 선입견과 함께 인식되고 있다. “남의 집 자식이 요리한다고 하면 ‘그래, 그거 요새 뜨는 직업이다’라고 하면서 자기 자식이 요리한다고 하면 ‘공부나 하라’고 하는 게 우리나라 어른들의 현실”이라는 권 셰프. 실제로 그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요리사 지망생들로부터 하루에도 수백 통의 메일을 받는다고 한다. “사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셰프라는 직업은 단순한 기술을 연마하는 직업이라기보다 ‘아티스트’에 가까워요. 칼질이나 프라이팬을 돌리는 기술은 사실 6개월만 훈련해도 능숙하게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셰프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음식을 풀어헤치는 능력과 식재료를 보는 안목이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맛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직업, 셰프. 그들에게 요리란 예술이다. “예술 가운데서도 가장 표현하기 힘들고 평가받기 어려운 것이 요리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간사한 신체부위인 ‘혀’를 만족시켜야 하니까요.”
이렇게 예민하고 섬세한 예술인 요리와 음식문화는 유독 한국에서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때운다’는 표현을 쓰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내가 먹는 음식을 스스로 하찮게 생각하는 거죠.”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음식’이 제 몫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굉장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길 가면서 간판들을 유심히 한번 봐요. 김밥○○, ○○만두, 삼겹살, 해장국, 또 김밥○○, ○○만두, 빵집, 설렁탕, 해장국……. 서울이 1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거느린 어마어마한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음식문화의 다양성은 형편없는 수준이에요.”

 


부자들만 가는 레스토랑은 가라!


그래서 권 셰프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가 세계 최고 호텔 레스토랑의 수석총괄주방장 자리를 반납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척박한 음식문화 속에 살고 있는 대중들이 큰 부담 없이 고급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에디스 카페’와 ‘더 스파이스’를 거쳐, 지난 13일 청담동에서 온전한 자신의 레스토랑 'LAB ⅩⅩⅣ'(랩 24)의 문을 열었다. 6~7가지 점심 코스메뉴가 4만~5만원대, 10~12가지 저녁 코스메뉴가 8만~9만원대 정도다. 주머니 얇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헉’소리 날 만하지만 국내의 여느 고급 레스토랑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합리적인 가격임을 알 수 있다. “학생들도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이런 식사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음식과 같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 결국 비즈니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아요.” 장차 리더가 되고자 하는 대학생들에게는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이 필요하고, 이를 기르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음식문화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 셰프 에드워드의 요리들, 왼쪽부터 관자와 오리간 그리고 말린 베리, 당근 벨벳과 오렌지 타라곤이 곁들여진 채소, 피칸 요칸과 올리브 오일.

 


“전 항상 고객의 입장에 서봐요. 어떤 식당에 가도, 이 정도 요리에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하다는 기준이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 레스토랑들은) 내가 봐도 너무 비싸거든. 제가 해외에서 일하며 많은 레스토랑을 다녀봤지만 우리나라만큼 거품이 많이 낀 외식시장이 별로 없어요.” 소수의 상류층을 겨냥해 초고가의 요리만을 선보이는 기존의 외식시장에 정면으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따라서 동종업계의 시기와 질투는 불가피했다. ‘거품을 빼라’며 기존 시장의 문제점을 대놓고 얘기하는 그를 업계에서 곱게 봐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팔자에 없던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그를 지지하는 든든한 대중들이 있었고, 이에 힘입어 그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급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다’는 그의 신념을 차근차근 실현해나가고 있다.

 

▲ 레스토랑 랩24의 내부 전경. 무채색 톤의 실내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말과 말 엉덩이 형상의 LED 패널로 포인트를 줬다.

 


『예스 셰프 시즌2』를 시작하며


한편 그는 지난 2009년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방영한 키친 서바이벌 프로그램 『에드워드권의 예스 셰프』(아래 『예스 셰프』)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당시 『예스 셰프』는 나이와 성별은 물론 학력, 경력의 제한을 일절 두지 않고 도전자를 선발해 화제가 됐다. 실제로 시즌1 우승자 역시 실무 경력이 전무한 19세의 여학생이었고, 도전자들 가운데서 가장 나이가 어렸기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오는 6월 4일, 『예스 셰프 시즌2』가 전파를 탄다. “『예스 셰프』는 단순히 요리만 잘하는 사람을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프로그램의 목적이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거라면 애초에 경력자를 선발하면 되겠죠. 허나 우리 프로그램의 목적은 셰프로서 가져야할 전방위적인 임기응변 능력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예스 셰프 시즌2』의 우승자는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에 취업할 기회를 얻게 됨과 동시에 1억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상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불편해했다. “개인적으로 상금을 거는 걸 반대했어요. 최근 흥행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거액의 상금으로 도전자들의 열정과 노력을 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 그럼에도 상금이 걸린 것은 본인이 미국에서 일할 때 겪었던 고생을 면하게 해주고픈 마음에서다. 방값도 비싸고, 돈 없이는 은행 계좌도 만들어주지 않는 미국의 생활환경 때문에 요리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안타까웠다는 권 셰프. “상금이라기보다는 ‘생활정착지원금’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우승자가 오로지 일에만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모범생에서 문제아로, 문제아에서 요리사로


세계적인 셰프로 명성을 떨친 그지만 처음부터 요리사를 꿈꿨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천주교 사제였다고 한다.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착실하게 신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그는 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방황을 시작했다. 성적은 급격히 떨어졌고 자연스레 대학진학도 불투명해졌다. 군입대를 권하는 아버지를 설득하다 포기한 그는 가출을 단행해 서울에서 재수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때 시작한 주방보조 아르바이트가 그의 요리 인생의 시작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점점 생활의 주가 되기 시작했고,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대학진학이 어려워보이자 그는 영장을 연기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전문대 조리학과에 원서를 썼다. 합격 후 곧바로 군대-그것도 취사병이 아닌 총무병으로-를 다녀왔고, 제대 후 호텔 리츠칼튼 서울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요리사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하프 문 베이 리츠칼튼 호텔로 간 이후, 남들보다 두 배로 일하고 남들의 반만 자는 각고의 노력을 계속한 끝에, 2년 만에 조리과장이 됐다. 이후 리츠칼튼 하프문 베이 호텔 조리차장(2003년), 한국의 W호텔 부총주방장(2004년), 중국의 텐진 쉐라톤그랜드호텔 총주방장(2005년), 두바이 페어몬트호텔 수석총괄주방장(2006년)을 거쳐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의 수석총괄주방장으로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대학생들에게? 일단은 “잘 놀아라”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는 사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시키는 대로 잘 따르며 살아온 학생들이 많다. 권 셰프는 그들에게 “차라리 원 없이 한 번 놀아보라”고 조언한다. “클럽 같은 데 가서 신나게 놀아보는 것도 좋고, 대책 없이 배낭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아요. 그 시절에는 살면서 다시 못할 것 같은 일들을 과감하게 저지르며 삶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탐색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나가서야 자신의 경험이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오늘의 대학생들에게 충분히 ‘삐그덕거리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말이다. “무조건 책상만 판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업에 정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가 정말로 미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에게도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이유인 즉슨 교육비와 기숙사비가 전면 무료인 ‘요리사관고등학교’를 세우기 위해서란다. 돈이 많아야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는, 이 학교를 통해 요리를 배우려 하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권 셰프. 그에게 돈은 중요치 않다. “두바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사기를 당해 그간 번 돈을 모두 날렸지만, 그래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건 내가 이 분야에서 잘 할 자신이 있고 이 일을 정말 미쳐서, 즐겁게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에게 정말로 재미있는 게 뭔지 찾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여 보세요.”


이수현 기자  not_alone@yonsei.ac.kr
자료사진 에드워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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