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짧은 기간 동안의 ‘기자질’에서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생각들

 

 


맞다.
무척이나 짧은 기간 동안 ‘기자질’이란 걸 하며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게 내 잠정결론이다.

1.「연세춘추」내 준칙에 의거하면 비속어 등은 따옴표로 처리해야한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무수히 많은 비속어들에 혹여나 따옴표가 쳐져있지 않더라도 자비를…

2. 꼭지이름에서도 보이지만 이것은 ‘일기’다.
기자 개인적인 생각을 가볍게 끼적인 것임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자기소개

나도 그 ‘개나소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다만 그 개나소나에 너무 발끈하지 않고 여유 있게 한번 바라보련다. 육상선수에겐 튼실한 허벅지와 빠른 발놀림이, 가수에겐 팡팡 터지는 목청과 풍부한 감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자질 하는 데 딱히 어떤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능력이라고까지 칭한다면 할 말은 없다. 맨날 맞춤법조차 틀려서 구박받는 나는 이조차도 안 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개나소나에 대한 마음 편한 해석이다.

그런데 이런 개나 소 같은 기자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이 지워질 때가 있다. 수습기자 딱지를 붙이고 있을 때 ‘내가 과연 3만 연세인이 구독하는 저 신문 지면에 내 허접한 기사를 올릴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이 학교에 애정이 있고 관심 있어왔는가’하는 거창한 중압감에 시달리곤 했다. 방학동안 교육과정을 거칠 때도, 이번 학기 기사를 위해 회의를 할 때도(특히 첫 기사를 쓰기 직전엔 더) 나는 막중한 책임감이라는 것 따위에 짓눌려 있었다. 무섭기까지 했다. 나 혼자 ‘기사’라는 것을 너무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기자가 쓰는 기사는 논문이나 기획안이 아니다.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며 마무리하는 글이 아닌 것이다. 기사의 가장 첫째 가는 목적은 사실전달이다. 즉 A와 B를 연결해주는 단순 ‘셔틀’ 역할이 기자질 중 으뜸이다. 그런데 간혹 어떤 기자가 어떤 상황에 대해 딴에는 나름대로 분석하고, 획기적인 사고방식을 멋들어지게 글로 풀어내면 ‘와 개념기자임’이란 댓글이 따라온다. 그럴 때면 나는 지 생각 써 내려가는 기자가 진짜 ‘개념기자’인지 아니면 ‘개념글쟁이’인지 모르겠다. 다만 기자질 중 으뜸인 셔틀질이 없다면 그게 기사는 아닌 것 같다.

학교소개

‘3주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학교, 교직원, 학생’. 내가 이들의 셔틀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 학교 얘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그 이름도 찬란한 ‘명문사학 연세대학교’
우리대학교는 참 좋다. 정말 좋다. 기사를 쓰다보면 타 대학과 비교를 많이 하게 되는데 우리학교는 진짜 좋다. 비싼 등록금 내는 만큼, 명문사학 소리 듣는 만큼의 값은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학교를 까기 위한 아이템을 내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내가 까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 해도 한 분야에 수 십년 종사한 교직원‘님’들이나, 다년간 학교일에 관심을 가져온 학생회 간부‘님’들을 감히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들의 논리 정연한 언사에 “아 그러네요”를 연발할 뿐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효율’. 이는 ‘어쩔 수 없다’내지 ‘이게 최선이다’라는 코러스를 항상 달고 다닌다. 그들 모두가 경제학 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인풋과 아웃풋을 철저히 따진다. 이들에게 손해 보는 장사란 있을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이미지’다. 우리대학교는 이미지를 굉장히 중요시 한다. 과장 좀 섞으면 ‘숭배’한다. 학교의 이미지, 도서관의 이미지, 백양로의 이미지 등등. 그것도 내가 만들어가는 이미지가 아닌 남이 만들어주는 이미지를 굉장히 중요시 한다. 즉 대내외 평가에 극도로 예민하다.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 애들이 미어터지든, 못 알아듣는 영어강의에 애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든 그건 애들 능력대로 할 바다. 겉만 뻔지르르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그들의 뇌 회백질 사이사이에 한땀한땀 파묻혀있다.

예수님은 ‘모든 생명이 한 근원인 신의 자녀이므로, 신분과 소유의 차별이 없는 평등하고 공정하며 풍요를 누리는 사회공동체를 구현’하려 하셨다. 하지만 미션스쿨인 우리대학교는  잘난 이미지만 가득하면서 영업비밀까지 소유한 자유기업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익을 위한 한낱 대형교회에 불과하다. 미션스쿨이라며 채플과 기독교과목은 필수로 지정하면서 기독교 정신 따윈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매일 효율성을 강조하고 표면적인 이미지만 그럴싸하게 포장할 뿐 정신상태는 이미 기업형인 것이다.


시간은 금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 장군
시간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삼단논법에 끼워 맞춰보면 얼추 들어맞는 것 같지만 그 과정도 결론도 옳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논리 정연하게 효율성을 외치는 이들도 잘 들여다보면 허접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명확한 논리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는 개나 소 같은 기자들이 우스워 보이고, 시답지 않은 걸로 꼬투리 잡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아무리 맑더라도 고인물은 썩게 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까겠다는 것이 아니다. 3주체님들 간의 서로 다른 생각을 연결하는 충실한 셔틀이 되겠다는 것이다. 학교를 해치려는 해사심(害社心)이 아니라 애사심(愛社心)으로 교내 학보사를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인소개

내 멋대로 형식이나 분량 상관없이 지껄일 수 있는 기회가 이번뿐이니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소감 말하듯 여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 나열 좀 해보련다.

내가 앞으로 기자질 하며 먹고 살겠다고 결정하면서 읽게 된 책이 있는데 그곳에 나온 문구가 있다. ‘좋은 기자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좋은 부장을 만나 리라잇을 받는 것이다’. 내가 쫄랑쫄랑 내민 첫 기사를 보고서 고심에 잠겼던 우리 부장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생각 없이 기사 쓴 건 다 들키고, 내 기사에는 수정이 아닌 전면 리모델링이 이뤄졌었다. 짧은 한 학기였지만 많이 배웠고 때문에 나름의 발전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서 두 명의 기자 중 한 명은 나랑 다음 학기에도 계속 싸울 것이고 한 명은 훠이훠이 떠나간다. 지난 학기 부국장이라는 양반이 한 학기 내내 ‘춘추하면 남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춘추에 처음 발을 들여놨을 때부터 기획취재부라는 곳에 들어오고 싶었지만 내 능력은 동기들에 비하면 보잘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부서나 배정돼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부서를 1순위로 지망한 것은 이들 때문이었으리라, 지금에서야 말해본다.

이번 학기 온갖 고난과 역경과 풍파를 겪고 살아남아 준 동기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 학기 장학금은 잘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미리 부모님께 죄송하단 말을 덧붙인다.


마무리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비밀일기장이 있다. 초등학교 때 내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들 순위를 15위까지 써놓는가 하면, 처음으로 털 난 기록도 있다. 심지어 매일 일기 끝에 ‘시’랍시고 끼적끼적댄 걸 보면 내가 봐도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일기의 90%이상은 여자얘기다. 그것도 누군가를 막 좋아하거나, 그래서 괴롭거나, 혹은 틀어졌을 때. 한마디로 마음 속 쌍곡선이 요동을 치고 굴곡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한 번씩 내 멋대로 내 마음 가는대로 쓴 것이다. 참으로 간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난 그 간사함으로 짧은 춘추생활을 해오지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기자는 사실만을 전달해야하고 취사선택으로 인한 왜곡보도는 지양해야하며 중립성을 지키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이상향을 주둥이로만 지껄이며 온 것은 아닐까? 현실은 시궁창인데.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에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성만을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얘기일 수 있다. 그래서 내 간사함을 조종하는 마음속 쌍곡선의 요동에 의해 누군가는 아쉬워하고,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고, 실제로 그랬다.

개나소나 기자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개나 소가 진짜 개나 소 짓을 하면 그것이 개판이다. 그래서 기자질을 개나 소같이 하겠다는 것은 아닌데 난 아직 개판에서 놀고 있는 것 같다. 이놈의 개판에서 난 언제쯤 벗어날까 오늘도 허공을 우러러본다.

글 서동준 기자 bio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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