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의 연애 매뉴얼 제 4화

연애는 마치 전쟁과 같다.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무척 힘들다 -멘겐

그런데 끝났다. 정말 끝이 났다. 다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을 뿐.
이 글은 사실상 내가 춘추에서 써내려가는 마지막 글이다. 아직 얼떨떨하지만 마지막이기에 가장 진솔하게 써보련다. 지난 3월, ‘연두의 연애 매뉴얼’의 탄생은 그간 부서 안에서 독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연애’에 대한 집대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기자들이 발 벗고 나섰는데 결과물들은 글쎄…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일에 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는 변명조차도 참 무색할 만큼. 딴에는 최선이었는데, 그래도 헤어짐에는 항상 이렇게 아쉬움이 남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지난 세월 나의 연애, 그리고 이별에 대해 끄적여볼까 한다. 1년 반 동안 뜨겁게 연애한 그에게 바치는 고백(혹은 넋두리)같은 걸 남김없이.

물론 이 이별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온 실연보다는 덜 아프지만, 그렇다고 아예 멀쩡하지도 않다. 우리의, 아니 적어도 나의 연애는 열렬했으니까. 내로라할 만한 연애 경력은 못되지만 그간의 경험에서 배운 게 있다면 연애의 시작과 끝에 대처하는 자세였다. 어찌됐든 모든 만남에서 이별은 찾아오고 우리는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 운이 좋게도 나는 그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유한한 끝을 알기에 나는 상대에게 더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지난 연애에서 후회와 미련, 그리고 상처가 적은 것은 내가 그만큼 상대에게 최선을 다했고 온 마음과 정성을 바쳤기 때문이었다.

▲ 그렇다.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참 어렵다.

 

해피엔딩의 조건

이렇게나 장황하게 내 연애에 대한 찬양을 늘어뜨려 놓는 이유는 이왕 시작한 연애라면, 그 과정에서 상대를 끌어안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뭐가 아쉬워서” 하고 자리를 박차는 건 조금 시간을 두고 해도 괜찮다고. 관계에 대해 너무 쉽게 회의를 가지진 말아달라고.
무엇보다 자신의 안목을 믿어볼 필요가 있다. 처음 내가 이 연애 상대를 택한 것에는, 그 선택을 이끈 어떠한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나는 입버릇처럼 그에게 ‘낚였다’라는 말을 내뱉곤 했는데, 솔직히 ‘낚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발을 빼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연애로부터 나는 책임감을 배웠고 충만감과 성취감을, 그리고 사람을 얻었으니까. 어느새 그와의 관계는 곧 나의 정체성이 됐으니까. 돌이켜보면 애초에 내가 굳이 이 악명 높은 상대를 애인으로 고른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가 바라던 것을 모두 가져가며 충분히 행복했다.

물론 그 과정은 지난했다. 많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한 까닭이다. 하지만 연애는 본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던가. 때로는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다시말해, 연애에서는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믿음이 꼭 필요하다. 그 절실한 믿음 하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누구보다 찌질한 엄살쟁이인 나도 버틴 연애였다. 힘들면 도리어 상대에게 치대는 법, 그러면서 그 속에서 깊은 관계를 맺는 법을 가르쳐 준 만남이었으니까. 나도, 상대도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같이 조화시키고 발전할 수 있었던 성숙의 기회였다.

▲ 무엇보다 내 안목을 믿어볼 필요가 있다. 아무렴, 그는 충분히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일 것.

 

아프니까 사랑이지

어느 정도 짐작했을런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수없이 등장한 그는 ‘춘추’다. 나의 사랑스런 문학도 파트너 ‘수근수근’의 표현을 빌리자면, 춘추는 이니셜만으로도 애틋한 우리들의 'CC'(ChunChu)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가 연애 상대 치고는 굉장히 지루무쌍하며,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고집불통임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또 춘추가 이러이러해서 정말 지독히도 힘들다는 고루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그 똑같은 경험에서도 더 아련해하고 애틋해하는 온도에는 차이가 있다는 데 방점을 두고 싶다. 춘추와의 연애에 사람들이 임하는 자세와 태도가 각기 달랐지 않은가. 그래서 각자의 결말도 극과 극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에 정을 붙이지 못한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못되게 군 상대의 탓이 훨씬 큰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마냥 이 연애는 이미 실패한 건 아닐까, 곧 실패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에 온통 마음을 쓰기보다는 부디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열어두면 좋겠다. 그러니까 결국엔 자기 하기 나름이다,는 매우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결론이지만, 내 나름의 해피엔딩을 거둔 나는, 조금은 지쳐있는 ‘춘추er’들도 꼭 그들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찾았으면 한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멘겐은 연애가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무척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이 고통도 열렬히 사랑해 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훈장과 같다. 그래서 참 영광스럽다. 훈장치고는 너무 가혹하긴 하다만. 아마 나는 이취임식에서 추잡하게 눈물콧물을 쏙 빼고는, 당분간 상사병 비슷한 우울증에 심하게 시달리겠지.
그래서 연애는 어렵고 또 어렵지만, 이제 정말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참 먹먹하지만, 이 같은 행복한 순간이 필시 내게는 또 찾아오리라 믿는다. 그렇게 나는 평생 수없이 많은 훈장들을 가슴 한켠에 박아놓고 싶다. 바라건대, 춘추가 그 중 유난히 빛나는 별이 되면 좋겠다. 안녕, 나의 CC.

이영빈 기자 yblee90@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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