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비망록]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에 자신을 ‘등에’와 같다고 했다. 덩치가 커 둔한 말이 단잠을 잘 수 없게 온종일 타이르고 나무랄 수 있도록, 신이 소크라테스를 ‘등에’로 만들었다면서.
춘추 기자로 1년 반, 그리고 학내 최전선에서 연세인을 대면하는 취재1부에서만 이제 한 해가 지났다. 그간 춘추는 내게 ‘등에’였다. ‘춘추 기자’라는 낙인은 내 뒤를 따라다녔다.
나는 본래 사람을 좋아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이를 당장에 추진해버리는 행동파다. 뜻이 모이고 함께할 수 있으면 현실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춘추 명함에 내 이름이 박히는 순간 학교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우두커니, 비딱하게, 그리고 숨 쉬는 아쉬움을 가슴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이 뿐일까.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나를 드러낼 수도 없었다. 춘추의 기사는 내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내 견해가 됐고, 알게 모르게 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됐다. 가끔씩 터지는 ‘보도 사고’에 나는 숨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떠날 수도 없었다. 나는 춘추 기자이고, 내 표정을 고치고 다시 그들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등에’처럼 나를 쏘아대던 ‘춘추 기자’라는 낙인은 이제 사라지게 됐다. 이쯤 되면 후련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눈에 익은 취재처들, 그네들의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이따금 내가 사는 세상에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약간의 보람까지. 조용필의 노래처럼 옆에 있는 소중한 것을 잊고 산 것은 아니었는지 돌이키게 됐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의 변명처럼 ‘등에’는 나를 깨어있도록 다그쳤던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선잠을 깬 사람처럼 등에를 잡아 없애려고 수십 번도 더 되뇌기도 했다. 그러나 신이 내게 이 요망한 ‘등에’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이 젊은 날을 졸면서 보냈으리라.
그래서 이제 나는 ‘등에’가 좋다. 이 죽일 놈의 ‘등에’는 조금만 더 정신 차리면 자연스레 선잠에 든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갈 테니까.

 

이민주 기자 mstylesta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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