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사민주의자’란다. ‘정치성향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사이트에서, 20개를 간신히 넘긴 문항들에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한 결과 나는 사민주의자라 ‘선고’받았다. 이 사이트에서는 친절히도 사민주의를 진보 혹은 개혁주의라고도 부른다고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이거 어쩌나. 정치성향도 알아버렸는데 민노당에라도 가입해야하나.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일찍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어떤 이름으로 규정되면 그 이름에 매인다. 사람들은 좌파 혹은 우파로 옭아맨다. 타인과 본인 모두를. 본인의 정치성향을 규정하게 되면 자유로운 사고는 어려워진다. 본인이 ‘보수’라 ‘믿는’ 사람은 진보언론의 기사를 무턱대고 비판하기 쉽다.
정치성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타인에 적용할 때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자신을 좌파 혹은 우파로 믿는 사람에게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수구꼴통’ 혹은 ‘좌파 빨갱이’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대학생들도 이와 같은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몇 주간 우리대학교를 뜨겁게 달궜던 ‘미화·경비 노동자파업(아래 노동자파업)’에서도 연세인들의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 강의실에서 노동자파업을 비판한 ㅇ교수는 노동자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에게서 ‘수구꼴통’이란 비판을 들어야 했다. 반대로 우리대학교 커뮤니티 ‘세연넷’ 익명게시판에는 노동자파업을 지지하는 총학생회가 ‘좌빨’로 치부됐다. 총학생회 임원들의 검증되지 않은 사생활까지 오르내리며 인격이 모독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정치성향을 ‘진단’하기란 쉽지 않다. 정치적 의견이란 사회가 처한 상황이나 분위기, 개인의 변덕스런 심리상태 혹은 사건의 세세한 전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쌍방의 입장을 듣고 자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정치성향이라기보다 논리의 문제다.
“내 정치성향을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누군가는 “대학교 3학년이나 됐으면, 이젠 성향을 정해야 할 때”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어떤 색깔에 얽매이기보다는, ‘줏대 없더라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싶다.

 

김정현 사회부장 iruntoyo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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