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정혜진 기자의 불 같은 시선

‘죽고싶다’
는 생각.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나의 경우 특히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와 재수 하게 됐을 때, 참 많이 생각했었다. 입시좌절과 준비의 반복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대학의 높은 문 앞에서 겪었던 쓰디쓴 좌절. 그것은 인생 최초의 ‘실패’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인생 최초의 ‘성공’을 거뒀던 고등학교 진학 시기의 나는 왜 죽고 싶었던 것일까.
나의 모교는 구내의 중학교 순위 평가에서 꼴찌에서 이등을 차지하는 그런 자랑스러운 곳이었다. 너 어느 학교 다니냐는 물음에 모교의 이름을 대면 “아! 너 그 똥통 학교 다니는구나”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이런 환경의 영향으로 중학교 시절 나는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도 ‘꽤 공부 좀 하는’ 학생으로 통했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덧 자연스럽게 ‘외고’라는 곳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주위의 예상과 달리 11: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운 좋게 그곳에 합격했다.
그 후 받은 충격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그 느낌을 요약해보자면 ‘우와 세상에 참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애들 많구나’였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어영부영 준비를 시작해 어쩌다 운이 좋아 오게 된 나 같은 사람에게 외고의 벽은 참으로 높았다.

카이스트 재학생 3명이 올해 들어 잇따라 자살했다. 지난 3월 29일 4학년 장모(25)씨가 서울의 13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고, 앞서 지난 3월 20일 경기도 수원에서는 과학고 출신 카이스트 2학년 김모(19)씨가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월에는 전문계고 출신으로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했던 카이스트 1학년 조모(19)씨가 학교 건물 보일러실 앞에서 자살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왜 이렇게 젊고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받는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네이버에 ‘카이스트 자살’이라고 검색해보자. 그 이유에 대한 분석과 추측이 쏟아져 나온다. ‘지나친 공부에 대한 중압감’, ‘학생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인 교육’ 등등등.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징벌적 등록금제’이다. 과거 카이스트는 경제적 부담 없이 연구와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전국의 우수한 과학 인재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지난 2007년부터 카이스트는 학생들의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차별적 등록금 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이 제도는 평점 3.0(만점 4.3)에서 0.01점 낮아질 때마다 다음 학기까지 약 6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특히 학점 2.0 미만의 평점자의 경우 최대 7백5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한다. 이 경우 그들에게 금전적인 부담도 부담이지만 ‘낙오자’가 된다는 것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고교 재학시절 상위 0.5% 이내의 ‘초 엘리트’였던 학생들로 구성된 이 집단에서, 최초로 낮은 점수의 성적표를 받게 됐을 때 그들의 느낌은 어땠을런지. 고등학교 시절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언론은 일제히 경쟁적인 구도를 조장하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좀먹는 카이스트의 등록금 제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이스트가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잘 살펴보면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카이스트의 등록금 제도는 사실 등록금 제도라기보다 장학금 제도에 가깝다. 즉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이상 충실히 수업을 따라간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부여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장학금이 차등 지급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모든 카이스트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등록금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야 될 등록금이 있음에도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 제도로 그것이 운영됐기 때문에 사실상 등록금을 내는 학생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카이스트 학생들이 받는 장학금 혜택은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공부도 제대로 안하면서 학점이 2.0 이하의 학사경고를 받는 학생들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장학금을 줘야 하는가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는 전국의, 아니 세상의 수많은 학생들이 볼 때 이것은 상당히 불합리한 일이다. 따라서 학교 입장에서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부는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현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등록금을 전부 다 내는 학생은 고작 3% 불과하다고 하니 차등지급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구조는 학생들이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고 이번 자살 사건에 적지 않은 원인으로 작용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카이스트 학생들과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얼마 전 취재 상 카이스트를 방문한 기억에 비추어 볼 때 ‘등록금 제도’가 잇따른 자살사건의 온전한 원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 성적과 등수 올리기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카이스트 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카이스트에 들어올 정도의 학생들이라면, 아마도 이미 치열한 경쟁을 수없이 겪었을 터이고 대부분 그런 일들을 잘 이겨냈을 것이다. 힘든 일을 잘 헤쳐 나왔기에 당당히 카이스트라는 명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 학생들은 너무도 쉽게, 그리고 너무도 극단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걸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내가 죽고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을 때 정말 죽어버리지 않고 그냥 살기로 결정했던 것은 주위의 누군가에게 의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털어놓고 수다를 떨고 위로를 받다보면 어느새 비관적인 생각은 저만큼 비켜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이스트의 경우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즉 학생들은 자신을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손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이것이 다른 여러 요인들과 맞물려 높은 자살률을 이끈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근본적인’ 대책으로 언론에서 언급되는 ‘차등적인 등록금제도 철폐’만으로는 부족하다.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고민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학내에 구축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민이 있다면 그 상대가 교수든, 동기든, 선배든 누구에게나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따라서 등록금 제도 외에도 학교 구성원간의 관계 개선과 충분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구축돼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뉴스에서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정혜진 기자   jhjtok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