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2부 임현채 기자의 불 같은 시선

얼마 전 배우 김성민(38)씨가 마약투여 혐의로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 다. 마약을 투여한 혐의로 형을 선고받으면 일반적으로 실형판결을 받는다. 그가 공인이기 때문에 형을 낮게 받았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공인이어서 그의 마약투여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것이고, 공인이기 때문에 사생활이 전부 드러난 것이다.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칭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광의적으로 연예인들도 함께 공인에 포함되고 있다. TV, 컴퓨터 등의 언론을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발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연예인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연예인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고, 많은 사람들을 그들을 보며 희로애락을 같이한다. 이 때문에 어느샌가 연예인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인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연예인들은 공인이기 때문에 득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실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득을 보는 경우는 말 그대로 그들이 선행을 베풀었을 때다. 선행을 하면 그들은 ‘연예인 누구는 얼굴도 이쁜데 마음씨도 곱네’라는 소리를 들으며 여러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다. 좋은 마음씨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이미지 상승은 일반인에 비해 수십 배의 효과를 가진다. 이혜영·션 부부의 선행, 김장훈의 기부 등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그들을 본받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며,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공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인이라는 지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많은 연예인들은 기자들의 표적이 된다. 이미 여러 신문과 인터넷에서 보이다시피 공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 ‘장자연리스트’ ‘아이유 과거 스티커사진’, ‘신정환 도박사건’, ‘연예인 남녀관계’ 등을 포함한 사생활 폭로들이 만연하다. 그들에게는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럴 때면 우리는 ‘공인이니까 더 그러면 안되지’라는 말을 하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왜 그들이 사생활을 침해받을 수밖에 없는 걸까. 사람들은 연예인은 돈이 많으니까, 이쁘니까, 연예인이니까 자기들도 드러나는 걸 좋아하니까 라는 식으로만 알고 있고, 이런 이유들로 사생활 공개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사생활 침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인이니까 괜찮아’라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왜 공인이라서 괜찮은 걸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의 올바른 본보기가 돼야 하고, 바른생활만 하며 살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외부적인 압박마저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은 집도 여러 채를 가지고 있으면 안되고, 연애를 해도 기사거리가 된다. 그들은 스크린에서 보이는 단면적인 것과 다르게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연예인들은 극성팬이나 소속사의 휴대폰 복제를 통해 사생활을 감시당하기도 했었고 힘들어했다. 이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게다가 연예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어렵다. 빚더미에 있어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말하기 어렵고, 스토킹을 당해도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자그마한 행동 하나하나가 여러 매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그들은 안타까운 삶을 산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쓴 채 살아야하고,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하루하루 수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소셜네트워크가 이미 크게 퍼진 지금 그들에게는 사생활이 없다. 미니홈피에 글 하나 남겼던 과거의 흔적 때문에 '2pm'의 재범이 피해를 당했고, 트위터에 퍼지는 글은 그의 팔로워 들을 통해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뉴스에 게재되곤 한다. 그리고 기자들은 공인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연예인들의 블로그, 여러 네트워크를 감시한다.
그러나 그들이 공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오히려 변명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사생활을 알아야 하는게 왜 당연한걸까. 수많은 네티즌들은 공인들의 약점 하나만으로 그들을 비판하고, 지적하고, 사회에서 매장한다. 소위 말하는 ‘까는 것’이 연예인들을 힘들게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밥을 먹으면서 반찬을 씹듯이 그들을 ‘씹는’ 것? 우리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공인들이 신비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한다. 아니, 그들의 입장에서 서서 이해해보려 한번이라도 노력해봐야 한다. 무조건 좋은 점만 칭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조건식의 추종이나 비판이 아닌, 어느 정도의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십거리들 때문에 그들은 힘들어 하고 심각하게는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따라서 소위 맹목적인 ‘까기’, ‘감싸주기’를 우선시하기보다 그들의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에 언론사에 있는 기자로서 그들의 삶을 더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지금도 노력한다.

 

임현채 기자  littleprinc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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