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을의 시작 그리고 개강과 함께 정기연고전을 다시 앞두고 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의 연고전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지난 일제강점 하에서 연고전을 통해 ‘연세와 고려’ 양교의 젊은이들이 분출하는 패기와 높은 기상이 암울했던 민족 전체에 희망을 주고, 이로써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양교의 젊은이들이 자부심과 의무감을 가지고 새로운 조국 건설의 기둥으로 민족과 조국의 발전에 헌신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프로스포츠가 없던 시절 연고전은 한국스포츠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었다.

모든 경기에는 승부가 갈리는 법이다. 양교의 친선과 우의를 다지는 연고전에 아무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그것이 경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승패가 엇갈리는 모든 경기에는 규칙이 있고 또한 공정한 심판자가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경기가 성립하고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규칙과 공정한 심판자가 존재하는 이 같은 스포츠정신은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더욱 필요하다. 아무리 ‘무한경쟁의 시대’라 하더라도 편법과 반칙이 난무한다면 이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마이클 셀덴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로 각광받는 데에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정의’에 관한 성찰과 바람이 깊게 담겨있음을 곱씹어 볼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2009학년도 정기연고전 축구경기와 관련해서 벌어졌던 고려대 감독의 심판매수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빚어졌고, 이는 특히 우리대학교의 입장에서는 크게 황망한 일이었다. 연고전을 앞두고서 심판을 매수해서라도 경기에서 이기고자 한 해당 감독의 심리적 중압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이로써 스포츠정신에 입각해서 양교의 친선과 우의를 다지는 연고전의 의미가 퇴색되고, 세간에 희화화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7년도 정기연고전 아이스하키경기에서는 심판선임을 둘러싼 고려대 측의 억지주장으로 끝내 경기가 무산되어 세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매년 치러지는 정기연고전의 의미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반문이 제기되어왔다. 연고전이 상업주의에 물든 대학스포츠의 현실 속에서 명문대학과 그 구성원들의 선민(選民)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장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불미스러운 심판매수사건 등을 거울삼아 이제 이 같은 의문과 비판을 불식시키는 데에 양교가 보다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해법은 비교적 간단해 보인다. 승부욕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는 정기연고전을 통해 양교의 친선과 우의를 다지는 본래의 의미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들만의 연고전이기 보다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겨루는 가운데 이러한 정신을 체화한 양교의 젊은이들이 우리사회의 귀감이 되고, 이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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