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던 설이 현실과 꼭 들어맞는 요즘이다. 어느 새 달력은 5월로 넘어왔지만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온도는 아직 쌀쌀하기만 하다. 봄이 더디게 오는가 싶더니 남부지방은 벌써 30도를 웃돈다. 갑작스레 여름이다. 새로 장만한 봄옷은 봄볕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장롱신세다.

이렇듯 오락가락한 날씨 속에서 봄은 연일 숨바꼭질 중이다. 2010년의 봄은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와 절묘하게 닮아있다. 선거쟁점을 둘러싼 여당과 야당의 정치싸움, 차디찬 심해 속으로 침몰된 천안함과 함께 희생된 46명의 장병들, 그 속에서 어김없이 드러나는 북풍몰이와 이념 색깔론. 차분히 새 생명의 시작을 품는 봄의 온건함이 실종됐다. 차갑다가도 느닷없이 더워지는 날씨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은 중간 지점을 향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양 극단에 치우쳐 있다.

의무 교육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급식 또한 무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과 무상급식의 전면실시는 단순한 복지 개념을 넘어선 좌파적 발상이라는 주장은 지방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의 정치 밥그릇 싸움이 이제는 자라나는 아이들 밥그릇까지 싸움거리로 만들고 있다. '4대강 죽이기' 사업으로 비판받는 현 정부의 4대강 사업은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 논란 속에서 강행되고 있다. 온 국민의 마음을 쓰라리게 했던 천안함 사건에서도 우리 사회는 차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실체에 대한 온갖 설들이 난무했고, 언론은 정치적 색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여론몰이를 하기 바빴다. 봄의 정신을 깨우치지 못한 2010년 대한민국 봄의 기록이다.

다시 창 밖 너머 주위를 둘러본다.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남겨놓은 흔적들에 새삼 놀라워진다. 어느 새 녹음으로 푸르러진 나무며 산을 바라보니 자연의 봄은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왔구나 싶다. 인간사의 실종된 봄은 대자연의 흐름 앞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2010년 지금의 봄을 곱씹어 본다. 겨울과 여름, 양 극단에서 봄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오늘과 그럼에도 기어코 찾아와 제 역할을 다한 자연의 봄을. 짓궂은 날씨 속에서도 봄은 새싹을 틔었고, 꽃잎을 흩날렸다.

권소영 기획취재부장 serendipit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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