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를 읽고]

이번 제1635호의 학술ㆍ랜덤ㆍ문화ㆍ여론기획 모두 내게 연세춘추를 읽는 즐거움을 주었지만 그 중 단연 으뜸은 ‘여론기획’이었다. 이것은 아무도 모르게 어느 덧 ‘위기’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된 대학 언론의 심각성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에 연세춘추는 학우들과의 소통이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학우들과의 소통이 목적인 대학언론은 그 고유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일까? 신뢰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덧붙여 또 하나의 의문을 던져 본다. 왜 연세춘추는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기사의 품질이다. 춘추에 실린 기사의 대부분은 같은 시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대동제가 다가오는 5월에 대동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제재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주제의 반복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기자는 바뀌었지만 그것에 대한 시선은 바뀌지 않는다. 비단 시선뿐만이 아니다. 기자의 결론은 늘 당위성과 낙관에 머물며 그 결과 구체성 또한 부족하다. 이제는 지겹다.

 다음으로는 편집권의 비독립성이다. 사실, 이 두 번째 원인이 앞선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연세춘추의 발행인은 학생이 아니다. 이 사실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진정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부재를 낳는다. 우리는 학교가 말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보다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알고 싶다! 또한 연세춘추와 소통하고 싶다.

 연세춘추의 기조인 ‘정론직필’은 이 문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정론직필 하되 기존과는 다르게 우리 연세인들의 진정한 관심사를 담아야 한다. 춘추가 아니라 ‘연세’춘추이지 않는가?

(철학 07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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