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로]

답답한 신촌 거리의 인파에서 벗어나 기찻길 만큼이나 길게 뻗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면 탁 트인 백양로가 우리를 맞는다.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들의 틈을 빠져나와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진리와 자유의 공간. 지난 몇 년간 수없이 걷던 이 길은 나이를 먹어 기억이 안개처럼 흐려진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선명한 이미지로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돌이켜 보면 이 공간은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았다. 숲속의 작은집 같던 신과대학 건물 자리에는 고귀한 기품이 느껴지는 새 건물이 세워졌고, 붉은 벽돌이 깔려 있던 중앙도서관 뒷길에는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학술정보원이 들어섰다. 흙바닥의 운동장은 인조잔디와 육상트랙이 깔린 새로운 모습으로, 작은 쪽문 주의로 개나리꽃이 피어있던 서문은 번듯한 교문과 경비실을 갖춘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옛 추억을 잃은 만큼 학생들의 생활은 편리해졌고, 여백의 여유로움을 잃은 만큼 실용적인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나와 우리를 위해 편리하고 안락한 공간을 만들려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고, 공장을 세우고, 도시를 건설해온 인류의 활동이 수많은 자연적 제약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한 역사에서 증명하듯, 캠퍼스의 변화도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번쯤 이런 의문은 가져본다. 담배갑을 쌓아둔 것 같은 도심의 삭막함을 벗어난 이런 탁 트인 해방감을, 수십 년 후 다시 이곳을 찾아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를 위한 선택에서 외면당한 요소들이 쌓이고 쌓여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위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추억과 여유를 끊임없이 희생한 끝에 우리의 캠퍼스도 신촌거리의 번잡함에 물들어 버리지 않을까?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이렇게 단순한 논리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을 미래에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현재의 수요가 미래세대의 수요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현재의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현재 우리 학교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그린 캠퍼스 캠페인도 이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신입생이 졸업을 하고 다시 새로운 신입생이 그 자리를 채우더라도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는 캠퍼스를 만드는 것, 그것이 작게는 연세의 미래를 밝게 만들고 나아가 미래세대를 풍요롭게 만든다.

 문제는 단순히 제도적 차원의 접근만으로는 그린 캠퍼스 캠페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차 없는 백양로를 만들려 해도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제3공학관에 태양광발전설비를 설치해도 필요 없는 전등을 끄는 손길이 없다면, 학술정보원에 중수도 시스템을 도입해도 물 한 방울을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모든 제도는 그 효력을 잃고 만다. 제도적 차원에서의 연구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아쉬운 점은 그린 캠퍼스 캠페인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린 캠퍼스 캠페인을 일상생활과 분리된, 학교 정책이나 학생단체 차원의 문제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린 캠퍼스를 위한 실천은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학교에, 우리의 환경에 조금 더 애정을 기울이는 마음이면 충분한 일이다.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 작은 손짓에서, 이면지를 활용하는 꼼꼼한 미덕에서, 환경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한마디 의견에서 연세의 미래를 여는 거대한 힘이 비롯된다.

 연고전의 경기장에서 연세의 함성을 들어본 연세인 이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가 얼마나 거대한 함성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목소리의 일부를 우리의 뒤를 잇는 후배들을 위해 내주었으면 한다. 다음세대를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캠퍼스를 사랑했으면 한다. 오늘 밤에도 빈 강의실의 전등을 끄는 우리의 손길이 연세의 미래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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