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유시민씨는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얻어낸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칭했다. 비용을 ‘선불’하고 민주주의를 얻은 서구사회와 다르게, 서구의 것을 그저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그 대가를 꾸준히 ‘후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후불제 민주주의가 때로 권력자의 의지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존중하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으면 그만큼 국민들이 후불해야 할 민주주의 비용이 줄어들지만, 민주주의를 존중하려는 자세가 결여된 권력자가 집권할 경우 그만큼 국민들이 후불해야 할 비용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를 존중하려는 자세가 결여된 권력자’가 집권한 후자의 경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재개발 사업으로 서민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미디어법 제정과 MBC 인사개입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전교조 탄압으로 교육정신을 짓밟고, ‘4대강’으로 이름만 바꾼 대운하 사업으로 생태계마저 훼손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의 부모세대가 후불해오던 민주주의를 단 2년 만에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그나마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4대강 사업 반대운동과 MBC 노조의 단식을 감행한 파업도 대부분 언론들의 침묵에 의해 묻혀버리고 있다. 이런 행보를 견제할 수 있는 가능성인 6·2 지방선거마저, 중앙선관위가 여당에 불리한 선거쟁점인 4대강,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집회와 서명운동을 금지함으로써 봉쇄되고 있다. 국민에 의해 뽑혔지만, 지금 민주주의는 국민의 손에 있지 않다.

우석훈씨는 『88만원 세대』에서 경쟁논리에 세뇌된 현 20대들은 지금의 위기에 저항할 능력도 동기도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현실을 고민하고 자발적 퇴교를 통해 저항한 고려대 여학생과 같은 20대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들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후불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이미 앞에서 언급된, 투표다. 이번 선거에서 필자처럼 처음 투표하는 사람도, 두세 번째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후보자들과 정당을 살펴보고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당신의 한 표가 우리의 부모세대들이 못다 이룬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후불을 이어나갈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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