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비망록]

기자에 마음이 있어 춘추에 들어왔다. 글 쓰는 게 좋아 글로 먹고 살고픈데 작가는 내가 되고 싶다고 맘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니 기자가 좋겠다 생각했다. 두루 경험 쌓고 그걸 바탕으로 글도 쓰고, 이 얼마나 오묘하고도 적절한 결합인가.

학생기자로 뛴 지 두 학기 째, ‘글+경험치+월급=기자’라는 나의 공식이 얼마나 단순무식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기자가 쓰는 건 글이 아니라 기사였다. 그리고 기사에는 일정한 틀이 있다. 고로 나만의 개성은 있는 힘껏 지양해야 할 덕목이 된다. 쓰기 싫은 주제도 써야 하고 쓰기 싫은 날도 써야 한다. 요컨대 생업의 글쓰기인 것이다. 밥벌이가 지겹단 얘기로 누구는 책도 냈었지. 그러고 보니 그도 기자출신이다.

이제 막 수습기자에서 정식기자가 된 기쁨에 젖어 취재열(熱)에 달떠 지내던  한 학기가 지나자, 슬슬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적당히 취재해도 그럭저럭 기사는 나오니 늘어난 것은 시간이오, 이를 채우는 것은 잡생각이다. “아아! 이것은 내가 그리던 삶이 아니야!”, “오오! 나에게 원하는 때 원하는 주제로 글 쓸 권리를 돌려줘!”, “춘추, 나에게 자유를!” 등등…. 가장 비장미가 감도는 순간은 ‘내가 춘추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하는 가정에 이를 때다. 아아, 얼굴에는 미소, 마음에는 평화.

그렇게 자꾸만 기자일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중, 이번 1634호 ‘케이블TV의 약진’ 취재차 tvN에 다녀왔다. 평소 즐겨 보던 「막돼먹은 영애씨」의 PD와 스텝들을 만났다. 만나기만 한 게 아니라 명함을 주고받았고 궁금한 걸 물었고 대화를 나눴다. 간만에 가슴이 뛰었다. 근데 이 설렘, 익숙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멘토로 삼아 모시고 있는 영화평론가, 존경해온 기자, 열렬히 신봉하는 칼럼니스트, 가장 근래에는 격하게 사모하는 소설가까지. 모두 학생기자 신분을 이용해 취재를 가장, 사심(私心)만만하게 만났던 취재원들이다.

내가 춘추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겹네, 고되네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이런 순간엔 역시나 가슴이 뛴다. 군소리일랑 삼키고 몇 번 남지 않은 사심취재의 기회를 소중히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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