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비망록]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는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여자는 고민을 공감해주기 바라기 때문에 갈등이 초래된다’고 설명한다. 그 설명, 꽤 설득력 있는지 베스트셀러가 됐다. 개인적으로 XX염색체를 가진 확실한 생물학적 여성인데, 이 책을 보며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나는 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안는 편이라는 얘기다. 말뿐인 주위의 위로 따위 노땡큐다. 문제는 내 문제뿐 아니라 친구들의 고민에도 같은 반응이라 가끔 동성친구들이 답답해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집 센 성질머리 때문에 결국은 감정이 상하는 파국에 이르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사회부 기자라는 것이다.
사회부 기자는 부서 특성상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평범한 아이템이라도 그것을 업그레이드된 기사로 만들어주는 건 기자의 빛나는 문제의식이다. 지난 1620호 ‘평행선 위 만날 수 없는 그들’ 기사를 위해 만났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암울했다. 3년가량 지속된 투쟁에 그들의 얼굴엔 지친기색이 완연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조원들이 하나둘 떠나는 상황에서 계속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는 호언장담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맥이 빠졌다. 수업을 뒤로하고 대전까지 취재를 간 것, 사측이 거짓정보를 들이대며 억지로 이해시키려던 것, 보도 후 항의메일 때문에 신경쓰였던 것 따윈 문제 되지 않았다. 다만 이 억울한 현실을 내가 눈꼽만큼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그것. 그게 날 화나게 했다. 속이 뒤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성질머리 꾹 눌러 참으며 고개를 끄덕일 밖에. 그들은 고작 한두번 끄덕여진 내 고개짓에도 감사했다. 에라이. 소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 대처하는 법도 이미 체득했다. 눈을 감으면 된다. 이번 학기에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쟁을 할 것이고 대학생들은 꿈을 가지는 것이 꿈일 것이며 사회는 문제투성일 것이다. 이 중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지난 학기랑 다를 것 없이. 또 맥이 빠진다. 하지만 차마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릴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해버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질까지 더러운 화성인이지만, 그래도 어떡해. 난 눈 똑바로 뜨고 이것들을 마주해야하는 사회부 기자인 것을.

 김혜진 기자 2every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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