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비망록]

몇 달 전 일본의 한 우익인사가 우리나라 비빔밥을 양두구육의 음식이라 비하해 국민적 분노를 샀다. ‘양두구육’은 중국 청나라 시대의 속어를 모은 『항언록』에 나온 ‘현양두 매구육(懸羊頭 賣狗肉)’의 준말로 양머리를 두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겉보기에는 훌륭하지만 내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사진부 기자인 나는 등교하기 전에 반드시 챙기는 물건이 있다. 바로 DSLR 카메라다. 언제 어디서 포토뉴스 아이템을 발견할 지 모르고 취재기자로부터 요청이 올 경우 바로 달려가기 위해서다. 「연세춘추」가 학교의 공식 신문사인 만큼 카메라 사양은 어느 일간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수전증이 있는 사람이 찍어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자동초점기능은 물론, 일일이 노출정도를 조절하지 않아도 원하는 밝기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이런 기능들에 부족한 나의 역량을 감춘 채 부기자로서의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개강호마다 실리는 사진기획은 대동제, 연고전과 함께 사진부의 3대 주요꼭지다. 지난 1629호에 실린 사진기획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취재원들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찾은 공통점은 주제였던 ‘열정’뿐만이 아니었다. 세련된 카메라를 매고 온 나에 대한 인상이었다. 반평생을 원예업에 몸담으신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들이대던 내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는지 “사진 잘 나온 신문 한 부 보내 달라”며 정류장까지 태워주셨다. 길거리 공연단, 연탄은행 담당직원, 마라토너들까지 사진이 어떻게 찍혔나 궁금해 했다. 그들에게 나는 단순히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기자’였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셔터를 눌러 포착한 장면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그 자체로 연세의 발자취가 된다는 것을. 사진기자는 일종의 저격수인 셈이다. 연발로 표적을 맞추는 게 아니라 한 발 한 발에 혼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깨에 멘 카메라 끈이 섹시해서 사진기자를 선망했던 적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심리적 경계선을 뚫고 들어가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에 소름이 돋은 순간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찍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보이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운 시절이었다. 정기자로서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학기, 나는 오늘도 양두구육을 곱씹으며 양두양육을 그려본다.

정석현 기자 remij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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