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로]

둘째 녀석의 입학식을 하루 앞둔 깊은 저녁. 잠을 설치는데, 지난 세월의 추억들이 이리저리 섞이면서 유독 신촌골 운동장 주변에서 놀던 추억들이 삼삼하여 감회에 젖어본다. "이렇게 이뤄지는 건가?"

며칠 전까지도 나는 연세의 모든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이 갔고 연세편이었다. 왜 그랬을까? 까닭 모를 연세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40년 전보다 더 오래 전에 울타리 없이 황토빛으로 거칠었던 신촌골 운동장은 본부 건물 뒤로 흐르는 계곡물과 함께 어린이거나 까까머리 중학생들에겐 더없이 좋은 놀이 동산이었다. 내달리고 넘어지고, 싸우다 지치면 멱을 감고, 그래도 지치면 가재도 잠아 구워먹던 추억이 있었다. 그런 추억 때문일까?

추억이 한참 지난 고동학교 시절, 전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곳 신촌골로 몰려들었다. 저마다 학교와 집안의 명예를 걸고 지금보다 더 치열했을 것 같은 입시를 치를 때에 감히 오를 생각도 못한채 '연세'라는 거대한 것에 대한 좌절감..

잠시 잊자, 그런데 어쩌자고 나는 백양로에 줄 지어선 벚꽃 나무가 꽃비를 날리는 5월이 오면, 단아한 그 모습이 너무나 슬퍼보여 그냥 눈물로 뚝뚝 떨어져 버리는 목련이 되는 5월이 오면, 또 9월이면 꽃보다 아름다운, 만지면 터질 것 같은 그들만의 축제와 아카라카.

아! 끓어 오르는 정열의 함성이 온 대지를 집어 삼키는 그 용트림의 연고전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무도 초대해주지 않는데.

연고전. 초대해 줄이 없는 나는 초대권을 구해보고자 학교 주변을 서성이기도 하고, 운이 좋은 어떤 해는 장충체육관 입구에서 이희암 감독을 조우해 동문인척 따라서 들어가기도 하고, 동아리 판매점에서 학부형을 가장해 약간의 기부금을 주고 당당하게 초대권을 사보기도 했고 또 어떤 해는 대학 최초의 여성 응원단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여학생 응원단장을 찾아가 억지로 초대를 받아서는 장충체육관으로 잠실구장으로 잰걸음을 내달려서 목청껏 '아카라카'를 외치며 연세와 한몸이 됐다.

그러나 문득, 스스로도 부끄럽고 이상해서 얼굴이 화끈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는데, 왜 그랬을까?

나의 이런 이상한 행동은 아이들이 고교생이된 3,4년 전에도 그대로 이어져 그들을 데리고 축제 현장을 누비기도 하고 노천극장으로, 도서관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또 글로벌 라운지로 돌아다니며 마치 아버지의 모교인 것처럼 낭만과 반면에 그 치열한 경쟁의 현장을 목격시키는 것으로 발전됐다. 황당해하는 녀석들을 맛난 먹거리로 재우며 그냥 그렇게 다녔다. 나의 그런 생뚱맞은 행동이 '맹모삼천지교'를 모방한듯 소망이 깃든 것이었을까, 나의 이상한 행동에 감천됐을까, 두 달 전 11월 어느 새벽에 "아버지 합격이에요"라며 흥분해 들뜬 둘째 녀석이 외친 소리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연?고대 동시 합격이라니! (물론 연세대학을 선택했다.)

연세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주변만 떠돌던 외로운 타인이 연세의 125년 역사와 전통, 수많은 인적, 사회적 네트워크와 자부심, 더해 미래의 밝은 비전에까지 모든 것과 상관하게 됐다. 비록 부모의 입장이지만 더 이상 타인이 아닌 것이다. 아버지의 무언의 소망을 읽어준 것이 고맙고 성공하지 못한 부모 밑이라 불만하고 좌절하는 주변 후배들에게 희망이 돼서 기특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가치를 평생 동안 가슴에 품고 'The First & The Best'의 가치를 실현할 것이니 대견스럽다. 그리고 섬김의 리더쉽을 발휘하는 겸손한 엘리트로서 훈련될 것이 뿌듯하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을 설치는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처마 밑 풍경은 미동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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