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처럼 앎과 모름의 경계가 모호한 존재가 또 있을까. 기자는 아무것도 몰라야 하면서 무엇이든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여야 하면서 학자와 같이 학문과 지식의 깊이를 지녀야 한다. 기획취재부 기자로서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나를 고민하게 하고 성장시켰던 8할은 앎과 모름의 모호한 경계가 아니었나 싶다.

취재준비에 있어서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과 몰라야 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항상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취재를 간 기자에게 어느 한 취재원은 "그렇게 몰라서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오겠느냐"며 꾸중을 했다. 만반의 사전조사와 준비를 끝낸 기자에게 또 다른 취재원은 "그렇게 잘 알면서 뭐가 궁금해서 찾아왔느냐"며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취재해야 할 것에 대해 기자가 너무 모른다면 제대로 취재를 할 수가 없다. 취재원과 도통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취재해야 할 것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다면 이 또한 취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말은 통할 수 있을지라도 취재원은 굳이 자신이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건데, 나는 취재에 있어 앎과 모름의 경계선을 어느 정도에서 그어야 하는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기사에서 다뤄야 할 사람과 사건에 대해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했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했다. 그것은 취재의 형식은 따르는 것이었지만 취재의 본질에 다가서지는 못했다.

앞으로 기자로서 내가 앎과 모름의 경계선을 때에 맞춰 조절해나갈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진실함을 갖추는 것이다. 앎과 모름을 왜곡하지 않고 사람과 사건을 굴절시키지 않으며 그것을 온전히 기사에 담아내는 것이 기사의 형식을 넘어서 진짜 본질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

흔히 '물을 수 있는 것'을 기자의 특권이라고 한다. 나는 이 특권을 어린 아이와 같이, 그리고 학자와 같이 쓰고자 한다. 어린 아이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으로, 학자의 탐구 정신으로 기사를 풀어내고 싶다. 질문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말 그대로 학문學文을 하는 기자로서 한 평생을 사는 것. 이것이 앎과 모름의 사이에 선 기자의 비망록이다.

권소영 기자 serendipit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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